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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과연 1990년대 초중반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축구를 할 여건이었는지 봅시다(2)

필리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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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냥 팩트만 열거하겠다. 

월드컵 유치 시도할때 동대문운동장을 전용구장으로 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서울에서 경기하는 대기업들 다 눈치만 보다 정부에 떠넘겼고 정부도 눈치보며 서울시에 떠넘기고 

서울시는 다시 대기업들에 떠넘겼다. 

1988년에 동대문 운동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하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1990년대 중반까지 전혀 안됬다. 

알다시피 동대문운동장은 1999년에도 쓰였다. 

1927년 일제시대 지어진 경기장이 계속해서 리폼도 안하고 그냥 이런저런 개조만 대충해서 썼다. 

축구협회나 프로축구연맹이나 월드컵경기장을 지어야하는데 월드컵 유치도 해야하는데 답답했음 

그래서 동대문운동장을 전용구장으로 바꾸려는 계획은 포기한다. 

어차피 될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동대문운동장, 유서깊은 역사의 축구성지는 철거된거다. 

만약에 1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축구전용구장으로 바뀌었으면 한일월드컵개막은 동대문에서 했다. 

상암동은 아직도 재개발지역이 되었을거다. 

그래서 동대문이 안되니까 서울시가 그냥 잠실종합에서 하자고 했다가 

국민들 72퍼센트가 '야 SBS들아 그냥 짓자고!' 하며 일본과 자존심이 걸린일이라고 신축해야한다고 해서 깨갱

그래서 결국 상암월드컵경기장이 주경기장이 된 것이다. 

이 과정중에서 과연 이 서울시의 새로운 축구경기장에 경기할 지역연고제 정착의 팀은 누가 되야할까 정해야

하는데, 당시 유공, LG, 일화 다 돈내기를 거부했다. https://i.imgur.com/NA7PB2Z.jpg

그러니까 전용경기장 건설에 돈 안내놓으면 서울 쫒겨난다고 말한거다. 

그런데 셋다 돈은 내기 싫으면서 서울은 떠나기 싫으니까 서로 너가 떠나라고 싸우다가 

사이좋게 셋다 쫓겨났다. 

자, 1987년이 지역연고제 시작이라고 했지? 근데 당시 기자들이나, 축구팬들이나 1987년을 지역연고제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단 한명도 없었고, 1996년을 실질적인 지역연고제로 본다. 

그 이전의 지역연고제라고하는 공식적 명칭은 기자들이나 팬들이 조소적으로 말하는 '기형적인 지역연고제'일뿐이다. 


다음 기사는 91년인데 연고제가 확립이 안되어있다고 까는 기자의 기사다. 

https://i.imgur.com/inbqf0d.jpg

 ....아직도 프로축구는 연고지가 정착되지 않아 6개팀 감독은 전국 어디를 가나 고정팬들이 몰려들게 마련. 


지역연고제가 확립이 되었으면 왜 이런 비판의식을 기자가 올릴까? 


심지어 그건 팬들도 마찬가지여서 

https://i.imgur.com/efAtQ2r.jpg

무려 97년에 안양보고 충청도로 돌아가라구~ 너네 공장있는 

충청에서 축구열기 ㅎㄷㄷ했잖어 했던 독자투고다. 

이런데 무슨 서울연고타령인가. 


96년의 지역연고제 의식 확립이 얼마나 대사건이었느냐면 98년의 K리그 붐을 취재하러온 일본기자가 언급하면서 긍정적인 효과라고 말할 정도였다. 

https://i.imgur.com/eugd7jJ.jpg


서울연고를 공동으로 두는건 프로축구연맹의 거의 반강제적인 기금요구가 원인이긴 하지만 월드컵을 개최한다는데도 미적거리며 그동안 서울에서 단물 다빨아놓고 내보낼거면 내보내봐라 난 안나간다고 무대책으로 뻐팅긴 세팀이 사이좋게 손잡고 나갔을 뿐인데 그거를 서울지역연고팀의 억울한 추방이라고 이제와서 미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같잖은거야 


서울에서 뻥차니까 그나마 살아남아보려고 지역팬들에게 집중하게 된거지 

왜? 서울에 그대로 있었으면 마케팅이나 제대로 했겠어? 안해. 서울이니까 많이 오겠지하고 그냥 방치만하고 있던게 바로 그 세팀의 상황이야 

심지어는 팬북도 안내면서 명문구단이라고 자처한다고 기가찬다고 개탄하던 축구인들도 있었음 

https://i.imgur.com/fpzLKnk.jpg

[수년동안 팬북 한권 제작하지 않은 구단이 명문구단으로 자처하는게 프로축구의 현실] 

과연 위 서울 세팀 그냥 둔다고 했을때 자기들이 알아서 프로축구단의 면모를 위해 노력하고 발전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90년 9월기사인데 94년 95년때도 동대문운동장은 저랬다. 

https://i.imgur.com/k9Ui4aj.jpg


결론 : 연맹과 축협이 기업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서울경기장 건립에 돈내라고 요구한것도 문제였지만 

있으나마나한 운영으로 서울축구팬들을 기만하고 지역연고제를 활성화하기는 커녕 교란시켰던 세팀이 서로 안나가겠다고 뻐팅기다가 사이좋게 같이 나갔음 


그후 동대문운동장은 서울에서도 축구경기를 봐야한다는 주장이 대두됨에 따라서 이후에도 중요한 컵대회 결승등에서 경기를 볼수 있었다. (수원도 동대문에서 우승한 적 많음)


반대로 만약에 LG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서울연고였다면 두팀반대를 무릎쓰고라도 전용구장건립계획을 세우겠다고 하고 무조건 사수하면 되는 거 아니었을까? 

어차피 나중에 안양에서 서울로 이전할때 돈을 냈는데 

그냥 나중에 내나 미리내나 다를바가 없었는데 굳이 안양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튀는 그런 촌극은 아예없었을거다. 안양이란 팀 자체도 없었을거고. 

뭐, 그냥 셋팀 서울에 있겠다고 한걸 그냥 두었으면 아마 모르지 2001년까지 쭈욱~ 서울연고지라는 팀 일화, LG, SK가 목동->동대문->안양종합->성남을 돌아다니며 너는 저곳 나는 이곳 이러면서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경기하며 K리그 발전을 저해하고 있었겠지 

그러면서 지역에서 건실하게 지역연고제를 시행하며 성장하는 클럽들을 기만하고 리그 자체를 완전 웃음거리로 전락시켰을지도 모르지. 


지금은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지만 당시 축구팬들이나 기자들이나 보는 시선은 다음 기사로 끝을 맺음으로 보여준다 

https://i.imgur.com/7d0yQ77.jpg



필리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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