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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서포터 문화가 좋아서 수원팬이 된사람도 있음.

윳마
772 23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가 있을까 싶어요..


나 역시 그냥 축구(국대. 당시박지성의 맨유. 조기축구회)를 좋아하는 평범한 20대 초반의 남자였죠.

홍대 힙합과 일렉 소규모 공연을 함께 다니며 즐기던 친구가 더 흥미진진한 곳이 있다며 데려간 곳이 상암에서의 원정석 이였죠.


개와 패륜. 나가뒤져라 콜은 전율이 날정도로 날 흥분시켰고 당시 사회 초년생으로서 월세도 힘들어하며 늘 굽히고 사는 나에게 있어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랑블루가 좋았습니다.

수원 서포터즈가 좋았습니다.

퇴근하고도 쉬지 못하고 수원 유니폼을 입고 서울지역 대학교에 포스터 붙이는 알바도 했었는데 "그랑이세요?" 하면서 사탕을 한움큼 쥐아주시던 여대생분.

"엄마 저아저씨 에두야~!" "아니 저건 축구팀 선수 이름이야 우리도 이번주에 저아저씨들 있는 축구장 가자" 라고 말씀하시던 수원팬인걸로 추정되던 애기와 애기엄마.

혼자 기사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해결하는데 " ㄱㄹㅅㄲ랑 겸상 못하겠네" 라길래 젊은 패기에 따라 나오라고 하니 그냥 가던 북패애들.(본인이 183에 90키로가 넘는 한덩치 하는데다가 당시에는 빡빡머리였음)


모두가 소중한 추억이었고 그 푸른 물결과 그 많던 깃발 혼자와도 어색하지 않게 당연히 주위 모든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며 오블라디를 하던 기억.


혼자였던 난 외롭지 않았고 든든 했으며 여러분들이 욕하는 이 서포터 문화가 결국은 나를 결국은 수원시민이 되게 만들었죠.


지금 이게시판의 여러 갈등과 분열.

지금이 마치 최악인거 처럼 말씀들 하시는데.

저에게 그 소중한 기억속 그랑블루 자게도 더했느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어요.

사람들이 많으면 개개인의.신념들은 더 많아지고 자신과 맞지 않음은 무조건 틀린걸로 규정하고..


제 생각과 신념은 이렇습니다.

프렌테트리콜로는 우리의 자랑입니다.

옛날과 다르게 이젠 금전적인부분도 여유로워 졌지만 가족이란 이름아래 우리를 위한 봉사와 헌신은 또 다시 어려워 졌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우리의 자랑을 더욱 드높이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것들 마저 욕되게 하는 지금 이곳의 현실이 안타까워요.


08년 챔결때 퍼포먼스를 위해 자원봉사 인원 모집을 했었는데 나온인원은 스컬크루분들이 대부분이었다죠. 같은 시간대에 울산과 북패의 플레이오프 관람왔다는 그랑블루자게의 글은 넘쳐났고..

우승으로 해피엔딩이 되버린 하얗게 눈이 내라던 그날 모두들 그.퍼포먼스의.사진을 보며 역시 우리 그랑블루 라며 감탄합니다.

그리고 새시즌이.시작되면 여지없이 강성서포터 왜그래..


이건 어쩔수 없나 봐요.

내가 이렇게 솜씨 없는 글을 날린데도 누구하나의 생각을 바꿀순 없어요.

다른이의 글을 본데도 프렌테트리콜로의.자부심을 갖는 내 의지를 꺽을순 없어요.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상처주진 말았으면 해요.


예전 그랑블루와 하이랜드가 갈라섰을때.

타팀팬들은 그랑블루를 병풍블루라고 비아냥 댔었어요. 인원은 많은데 목소리도 작고 응원도 못한다고..


그거처럼 비수에 꽃히는 슬픈이야기가 어디있을까요.


프렌테트리콜로는 나의 자랑입니다.


난 수원시민이 되는걸 꿈꾸며 수원사람은 평소에도 머플러로 얼굴 반쯤 가리고 다니고 다들 목청도 크고 옷도 세련되게 입고 탐도 잘치고 카리스마도 있고 작사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집에는 깃발하나씩 가지고 있는줄 알았어요.


나같이 자부심을 느끼며 인생을 수원에 걸게 되는 사람도 있을거예요.


우리의 자랑 우리의 자부심마저 뭉개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논란이.되고 싶어 적는글은 아닙니다.


쌀쌀하네요.


좋은 하루 보내시고 긴 휴식기 뒤에 나의 수원 우리의 수원을 더욱 목청껏 외치게 에너지.잘 보충들 하십시요


윳마
3 Lv. 885/14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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