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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수원 축구와 스피드

푸르게푸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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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대전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지루하게 참호전이 이어진 비극적인 전쟁이었습니다.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하루에

 

몇 만명씩 없어지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파스샹달 같은 경우 독일과 영국 양측 사망자가 60만에 달했습니다.

 

전쟁은 결국 미국의 참전에 따른 군사력의 차이와 독일의 전쟁물자 소모로 끝나고 말았지만 독일의 항복 선언 당시에도

 

독일군의 최전방 군인들은 자신들이 전쟁에 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왜 우리가 유리한데 갑자기 항복하지

 

이런 반응이었답니다. 결국 이 전쟁은 승자 없이 모두 패한 전쟁과 다름 없었습니다.

 

전쟁 후 많은 전쟁전문가들과 장군들이 1차 세계대전이 왜 끔찍한 살상전과 참호전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파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문제점은 대체적으로 일치 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

 

기동력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총기류의 기하급수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후장식 (총알을 뒤에서 장전)하는 총이 일반화 되어

 

분당 사격가능한 수가 늘어나고 기관총이 개발되었습니다. 거기에 총기에 강선을 도입하기 시작하자 총의 명중률이

 

높아졌습니다. 그렇게 되자 기병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큰 몸집의 말과 남들보다 높은 곳에 앉아 있는 기병 군사들은

 

좋은 사격 대상이 되었고, 기관총은 기병들의 돌격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렇게 전장에서 기병이 사라지자 전투에서

 

기동력을 담당하는 병종이 사라져 버렸고, 결국 전장은 느린 보병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하고 지루한 곳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스피드가 사라진 전장을 더욱 끔찍하게 한 것은 전쟁이론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군사 이론을 기계적으로 접목하려 했던

 

일부 장군들의 무지도 한 몫했습니다. 그 당시는 공격이 최상이라는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대포의 사용이 일반화

 

되고 원심 타격이 일반화 되면서 수비만 해선 안된다는 의식이 강해졌고, 나폴레옹이 유럽을 호령하던 당시 나폴레옹의

 

전술이 이어지면서 공격만이 최상이라는 의식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문제는 1차 세계대전의 시기는 이미 무기체계도

 

모두 달라졌고 사람들도 모두 달랐습니다. 하지만 장군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그저 기계적으로 이입해 수많은 병사들을

 

철조망과 기관총이 가득한 킬링필드로 밀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무의미한 전선 공방전을 수년을 하고 나서야 일부

 

사람들만 반성했을 뿐 대부분은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파악하지도 못했습니다.

 

수원 축구에서 승리가 없어지고 상대를 압도하는 기세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재미가 사라진데는 그 무엇보다도

 

기동력이 사라진데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이미 자신들이 원하는 수비를 구축하기 전에 이어지는 공격과

 

상대의 수비를 무너뜨리는 스피드를 활용하는 공격이 없어지자 수원축구는 1차 세계대전 전장처럼 지리하고

 

체력만 소모하는 축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혹시라도 코칭스텝이 이 글을 보신다면 수원의 경기에 왜 스피드가

 

사라졌는지를 생각해주시기 바라며, 다시금 기동력이 살아나는 경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서정원 감독님, 왜 감독님이 선수시절 뛰어난 선수로 인정받았는지 한 번만 생각해주십시오.

푸르게푸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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