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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쨌든 은퇴하게된 이정수라는 축구선수에 대해 내가 기억할 역사

Boom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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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수에 대해 처음알게 된건 2005시즌 끝나고 2006시즌 준비중일때
2005시즌 개천 돌풍의 알토란이 영입됐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사실 당시 수원 네임밸류에 비해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2006시즌 개막전 북패와의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당시 대세라고 일컬어지던 박주영을 봉쇄함.
그후 수원에서 곽희주와 함께 빠른발과 강한 피지컬을 앞세워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박건하, 이병근, 김영선등과 조병국, 조성환등이 떠나게된 수원 수비진 세대교체의 핵심선수가 됨.
2007-2008시즌 이정수는 마토, 싸빅, 곽희주, 홍순학, 송종국, 김대의, 양상민등에 골키퍼 이운재와 더불어 3백과 4백, 5백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차붐식 수비전술을 구축하며
수원 아니 k리그 역사상 최고로 평가될 수비진의 핵심이 됨.
그리고 그 결과 이정수와 수원은 2008시즌 k리그 우승을 차지함.

그후 이정수는 fa를 통해 일본 j리그로 이적하며 우리와의 인연은 끝나는듯 했음.

이정수는 국대에서도 한국축구에 길이남을 선수인데 2008년경부터 당시 국대감독 허정무의 중용을 받으며 국대에 발탁됐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출전함.

2010년 남아공월드컵서 2골을 넣었는데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가하면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수비수가 두 골이상을 넣은건 홍명보와 이정수가 유일하고 이정수보다 월드컵에서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박지성, 안정환 단 두명뿐임.

이정수는 2008~2010년사이 정도까지만 국대에 발탁되고 이후론 거의 발탁되지 못했음. 하지만 이 사이에 출전한 a매치 출장경기수는 50대 중반인데 이는 거진 10년 가까이 국대붙박이 수비수인 곽태휘의 기록과 맞먹는 수치. 얼마나 믿음직했고 핵심적인 수비수였는지 보여주는 지표. 난 개인적으로 2002년 4강 신화의 수비에 홍명보가 있다면 2010년 원정 16강의 수비엔 이정수가 있다고 당당히 칭할수 있다고 생각함.

이정수는 이후 카타르 알사드로 이적. 2011년 우리와의 아챔경기중불미스런일이 생기자 자진퇴장을 하는등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팀적으론 맹활약을 펼치며 아챔우승을 하고 약 6-7년간 뛰며 어마어마한 외화를 쓸어옴.

2016시즌 전 알사드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이적을 결심. 아시아의 다른 많은 구단들이나 k리그 구단들이 노리는 와중에 의리를 지키겠다고 카타르시절과는 비교불가한 적은 연봉으로 수원복귀. 40세에 은퇴하겠다는 마지막 목표를 세움.

2016년 팀성적이 개판을 치는 고분군투속에서 3득점.
그리고 파컵 우승.

2017년 중반 돌연 은퇴.

이 선수에 대한 평가는 개인재량이지만
나한테 이정수는 뛴 시간은 짧았어도 우리팀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로 기억될듯

그동안 고생했고 마지막 부탁으로는 경기장에 찾아와서 허심탄회하게 문제있던 사람들과 오해풀고 은퇴했으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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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m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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