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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수원의 전설을 말하다: 이관우 편

T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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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다 끝나가지만수원에는 봄이 왔다. ‘매탄소년단이 지상파를 타면서 득점몰이와 인기몰이를 모두 하고 있는 이 시즌에, Team BlueWhelk(이하 ‘TBW’)는 이 분위기를 타 간만에 인터뷰를 재개해보자고 마음을 먹었고수원의 전설적인 인물들을 살펴보다가 얼마 전에 TBW 인스타그램을 맞팔로우’ 해주신 이관우 감독님이 생각났다그리고 곧장 연락을 취했고흔쾌히 허락해주셨다.


그래서 준비했다이관우 감독님의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비하인드 스토리대전에서 수원의 이적 과정부터 그 유명했던 낙지집까지독자분들이 충분히 기대하셔도 좋을 알이 꽉 찬’ 내용만 담았다지금부터 시작하겠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먼저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구단 수원 삼성 블루윙즈(이하 수원’)에서 뛴 이관우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청주대학교에서 감독으로 부임한 지 이제 8개월 되면서 아주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image.png [TBW] 수원의 전설을 말하다: 이관우 편청주대 감독으로 활약 중인 이관우 감독님


혹시 오늘 거울 보셨나요여전히 외모가 별보다 아름다우시던가요...?

거울은 자주 보는데 외모는 이제 늙었구나 하는 생각입니다솔직히 그런 생각을 안 해봐서 샤워하고 로션 바를때나 보는거지요.


농담입니다진짜 질문 시작할게요현재 청주대학교 감독으로 계시는데대학부 감독으로서 비전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비전으로는 성인 무대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기에 지금 현 위치보다 좋은 무대를 갈 수 있게 경쟁력 있는 선수를 만드는 것이고목표로는 청주대 출신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 더 많이 진출하는 것입니다.


현 감독 생활 이후에 프로 코치나 감독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으시진 않으신가요?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하지만 수원에서 유소년을 총괄하는 디렉터가 되고 싶어요수원 색깔에 맞는 선수도 발굴하고 그래도 팬들이 원한다면감독으로?


다음에 수원으로 수석코치 혹은 코치진으로 제의가 온다면 흔쾌히 수락하실 건가요?
흔쾌히 수락은 힘들 것 같아요많은 내공과 경험팀을 위해 도움이 될 정도의 능력이 준비되어 있다면 위치에 상관없이 수락할 겁니다.


과거에 리틀윙즈에서 코치와 감독을 경험하셨는데, '이 선수는 잘 되겠다'하는 선수나 혹은 지금 기대 이상으로 활약 중인 선수는 없었나요?

요즘 잘 나가는 정상빈강현묵김상준 선수가 더욱더 기대돼요작년에 전임지도자로 일하면서 U-19 팀 코치로 3명의 선수를 계속 체크 했었는데 성인팀에서 쓸 수 있는 카드라 생각했어요. 3명의 선수 모두 좋은 기량좋은 인상을 지녔어요.


그럼 지금 수원에서 매탄고 출신 선수 중에 감독님 관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강현묵 선수제가 중원을 봐서인지 눈이 많이 가는 선수예요그리고 제가 40~50명의 제자가 있는데 현 매탄고 2학년의 GK인 김정훈 선수가 기대돼요지금도 그 제자들이 팀 소속은 다르지만 현 위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서 현재까지의 유소년 3년이란 시간을 지도자로서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생각해요.


현재 수원과 대전의 현역 선수 중에 본인과 가장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선수는 누구인가요?

비슷한 스타일이라저와 흡사한 플레이를 한 선수는 없지만수원-대전 모두 저보다 뛰어난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에요.


청주대에서 단 한 명의 선수를 수원으로 이적시킬 수 있다면 누가 있을까요?

청주대에서 한 명을 데려가자면. 3명으로 늘려주시면 안 될까요? (웃음) 1학년, 2학년, 3학년학년별로 1명씩 데려가고 싶네요


수원에서 뛰는 동안 등번호 13번을 다셨어요특별한 의미가 있었을까요?

대전에서 이적 당시 8번을 달고 뛰었었는데 수원에는 그 당시 송종국 선수가 8번을 달고 있었어요이적 후 팀 관계자가 남는 번호가 13, 20, 등등 있었다고 했어요. 13이라는 숫자가 1하고 3을 붙이면 B가 되잖아요이게 8처럼 보여서 13번을 하게 됐어요.

image.png [TBW] 수원의 전설을 말하다: 이관우 편

수원 시절 내내 13번을 달았었다.


6년 동안 포지션도 측면과 중앙을 오가셨는데어디가 가장 편하셨었나요?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편하기는 측면이지만 운동장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들을 보면 중앙에서 뿌려주는 패스저는 그게 제일 좋았어요.


선천적 양발잡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노력의 결관가요아니면 재능인가요?

왼발 훈련을 많이 했어요어느 상황에서도 빠르게 진행되기 위해서요내가 주로 사용하는 발만을 사용했다면 제 단점을 커버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은 희미해졌지만과거에는 대전과 수원도 빼놓을 수 없는 라이벌 구단이었어요혹시 당시의 이적 비화가 있을까요?

- 2006년이 시작되면서 소문이 돌았어요시즌이 끝난 후 성남으로 이적한다는 소문그리고 J리그에서도 관심이 있었던 시기라서요그해 월드컵 기간 때갑자기 이임생 선생님께서 성남보다는 수원으로 와서 같이 해보자 하셨어요[편집자당시 이임생 전 감독은 수원의 트레이너로 있었다] 그때 당시에 에이전트도 없이 모든 오퍼는 대전에서 받는 상태였고 (수원 측의전화를 받고 구단에 들어가서 보내 달라 졸랐지요졸랐다기보다는 내 의사 없이 성남하고 가계약을 했다는 소문 때문에 대전에 대한 실망이 있었어서정말 대전을 위해 열심히 했다는 마음이 컸기에 선수 동의 없이 모르게 진행하다 보니그래서 그때 대전만큼 수원의 축구 열기도 대단했기 때문에 이적하더라도 무조건 수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한 달여 동안 고민 끝에 당시 메인 스폰서였던 계룡건설’ 회장님께서 승낙을 해주셔서 이적할 수 있었습니다당시 회장님께서 조건은 은퇴는 대전에서 했으면 한다는 말씀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러브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감독님께서는 홈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신 경험이 있어요이임생 감독의 러브콜이 있어서 선수로 복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편집자당시 이임생 감독은 싱가포르의 홈 유나이티드 감독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연락이 왔을 때 제가 축구를 2년여 동안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코치로 제안한 줄 알았습니다계속해서 통화를 해보는데 선수로 오라고 하셔서 좋았다기보다는 좀 당황했어요왜냐하면, 2년 전에 다시는 축구를 하면 안 된다는 의사 소견도 있었고하루 동안 고민하다가 결정했어요단 1경기를 뛰더라도 내가 평생 한 축구장에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이었지요정말 더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만. (웃음) 2년 동안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었어요혼자 생활하느라 힘은 들었지만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그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부상이 아니었다면 더 높은 무대도 바라볼 수 있었을까요?
더 높은 곳보다는 무대가 어디라도 선수 생활을 더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시 대전-수원 이야기로 넘어가서감독님께 대전과 수원은 어떤 구단이었나요?

대전이라는 팀은 아버지 같은 팀묵묵하게 지켜봐 주시는 아버지수원이라는 팀은 어머니 같은 팀가정에서 보면 부모님들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수원은 매 경기 선수의 질책과 칭찬이 나오는 팀이지요열정적인 응원에 그 두 가지가 선수를 성장시키고 그라운드에서 모든 걸 쏟아내게 만드는 것 같아요.


대전 출신 선수들과 은퇴 후에도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지내시나요?
형들과 연락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청주대 부임 후 선배들이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계룡 18세 팀의 강정훈 감독님천안축구센터 18세 김종현 감독님이 최근에 많이 연락하세요.


수원 소속 선수 시절 통틀어 호흡이 가장 잘 맞았던 선수는 누구인가요?

수원에서 뛸 때 처음 이적하고 지금 저와 청주대 코치로 있는 한병용 코치그리고 수원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백지훈 선수하고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지금 수원의 감독으로 계신 박건하 감독님은 어떤 선수였나요그리고 두 분은 어떤 관계였나요?

박건하 감독님은 운동장 안에서 리더십이 뛰어났었고 운동장 밖에서는 조용하신 분이었어요저는 좀 활발한 성격이라 어울림은 많이 없었지만그때 그 리더십이 지금 지도하시는 모습에 보이는 것 같아요.


수원에서 뛰었던 경기 중 가장 기억 남는 경기와 골 혹은 도움은 무엇이었나요?

득점 중에는 슈퍼매치 원정 발리슛 후 경례 셀러브레이션이요군대도 안 갔다 왔는데 뭐랄까... 나도 이제 수원맨이다... ... 그런... [편집자감독님은 과거에 연골 수술로 인해 병역 면제 판정을 받으셨다]

image.png [TBW] 수원의 전설을 말하다: 이관우 편

죄송합니다. 경례 장면을 못 잡았습니다.


수원 시절을 회상해본다면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이적하고 1년 6개월 동안 쉬는 날이 더 많았어요전 아직도 그게 수원 팬들에게 너무 죄송함이 있어요.


팬들이 오해하고 있는 본인에 대한 편견은 없나요예를 들면 유리몸이라던가이건 좀 농담조로 말씀드리는 거지만멋없는 골은 일부러 넣지 않는다던가요.

유리몸프로 1년 차에 첫 부상이 큰 부상이었어요. 2000년 4라오스전 A매치 경기에서 오른쪽 발목에 있는 인대가 다 끊어졌었어요한 발목에 철심 6개를 박아놓은 수술이지요중요한 건 부상 관리였던 것 같아요수술 후 더 많은 회복이 필요했지만 빨리 그라운드에 복귀하고 싶은 생각에아무래도 올림픽국가대표 소속이라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프로 생활을 하는 동안 하루도 안 아픈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그리고 모든 선수라면 득점을 하면 좋겠지만 저는 동료들 득점에 더 흥분한 것 같아요포지션 상 득점은 중요한 순간에!


그렇군요과거 수원은 그래도 찬란했습니다현재 수원은 나름대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어요외부에서 보셨을 때조금 안타깝다고 느끼신 적이 있었을까요?
안타까운 점보다는 지금처럼 유스팀에 더 많은 투자로 좋은 선수를 만들면서 한국 최고의 클럽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크지요.


이건 많이 들어보셨을 질문 같은데수원과 대전이 경기를 치른다면 어느 팀을 응원하실 건가요? ‘이기는 팀이 우리 팀인가요?

- 50:50인 것 같아요양 팀이 많은 득점으로 무승부가 되는 경기.


97' 세계 청소년 대회 이후에 유럽에서 많은 오퍼를 받았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요사실이라면 그 당시에 해외 진출에 대해 아쉬움은 없으셨나요?

정확하게 오퍼를 받은 건 사실입니다제가 대학 소속팀이었고당시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협회 요청인가그래서 부모님 집으로 영어 쓰는 사람이 전화했다고 부모님이 말씀해주셨어요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현 베트남 의무팀으로 계시는 최주영 팀닥터 선생님이 당시 말레이시아에서 에이전트를 통해서 저와 미팅을 했었는데 군 문제도 있고 학교와도 상의를 해야 한다뭐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지만현실은 그냥 오퍼그 외에도 대전 시절 포르투갈 전지훈련에서 구단을 통해 오퍼가 왔었지만 현실은 팀 잔류... 여러모로 잘 풀리지는 않았네요.


팬 대다수가 감독님의 2000년에 호주 4개국 개회 때 4명을 제치고 넣은 득점을 가장 인상 깊어 득점이라는 사실에 동의했어요감독님께서 회상하실 때커리어를 통틀어 본인이 생각하시는 '역대 최고의 골'은 무엇이었나요?

역대 최고의 골이라많은 득점은 아니었지만프로 마지막 득점이요. 2008년 성남전 멀티골 득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왜냐하면그 득점이 K리그 마지막 골이었기에.


2003국가대표 코엘류호에 승선한 적이 있었어요그 당시 기분은 어떠셨나요?

코엘류 감독님은 정말 저에게 많은 신뢰를 주신 분이라고 생각했어요첫 훈련 후 통역관을 통해 후이 코스타와 같다고 하셨거든요. (웃음[편집자후이 코스타는 포르투갈의 골든 제너레이션을 이끈 포르투갈의 마에스트로로최강의 패스마스터로 평가받고 있다현재는 SL 벤피카 구단장으로 있다]


빌드업을 중시하는 추세에도 K리그는 감독님의 선수 시절처럼 공을 예쁘게 차는 미드필더가 빛을 보기 어려운 리그로 인식이 잡혀 있어요현역 시절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셨나요?

- 10년 전만 해도 빌드업을 하는 팀이 없었으니까요전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주위를 많이 보고 동료를 지시하려고 노력했어요그래야지만 볼을 소유했을 시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를 살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선수 시절 창의적인 플레이로 많은 사랑을 받으셨어요현재는 선수가 아닌 감독이신데 선수 시절에 하셨던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선호하시나요아니면 선 굵은 축구를 선호하시나요?

이 질문은 연령별/아마추어/성인팀에 따라 달라져요지금 현 위치에서는 결과를 보여줘야 즐거운 축구 아닐까요경기력이 좋고 패하는 것보다 경기력은 조금 부족했지만 이겼을 때의 느낌아마 저보다 팬분들이 더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은퇴 이후에 낙지집과 불고깃집을 하셨었다고 들었는데... 어쩌다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음식점은 단지 아픈 다리로 많은 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먹고는 살아야 한다는 독한 마음으로 했어요정말 다시 하라면두렵네요.


맛있었나요...?

맛은 굿이지요. (웃음)

image.png [TBW] 수원의 전설을 말하다: 이관우 편

당시 실제로 차렸던 낙지집


답변 감사합니다마지막 질문이에요감독님을 추억하고 있는 수원과 대전 팬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정말 수원과 대전 팬분들께 선수 시절에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하고 싶은 말을 얘기하자면 몇 날 며칠이 걸려도 모자랄 것 같아서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어요제가 축구계아니 죽는 그 날까지 어느 위치에 있든 감사하며 받은 사랑 잊지 않고 후배 축구 선수들에게 베풀면서 살아가겠습니다수원과 대전많은 추억과 기쁨-슬픔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 너무나 감사합니다.


아픔도 있었지만추억이 더 많았던 이관우 감독님은 두 구단에서의 받은 사랑을 한 아름 안고 오늘도 이를 베풀기 위해 몸을 움직이셨다청주대 감독으로서 더욱 성장해서 그를 빅버드에서우리의 동료로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을 그 날을 기원한다.


(자필 인터뷰가 따로 있습니다. 자필 인터뷰는 추후에 블로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전 인터뷰 보러 가기]

나드손 편: https://teambluewhelk.tistory.com/2?category=776121

산토스 편: https://teambluewhelk.tistory.com/7?category=776121

김진우 편: https://teambluewhelk.tistory.com/8?category=776121

스테보 편: https://teambluewhelk.tistory.com/9?category=776121

외국인 팬 편: https://teambluewhelk.tistory.com/10?category=776123

곽민선 편: https://teambluewhelk.tistory.com/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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