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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바르셀로나 오퍼 받은 최초의 한국 선수...벤피카 이적만했다면? ㅠㅠ 서정원은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라고 생각함

수원을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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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유럽의 정보도 부족했고 에이전트도 정말 무능했고 

지금 시대에 서정원 이라는 선수가 나왔다면 어느 정도까지  올라갔을지 정말 궁금하다

30대 중반에 오스트리아 리그 최우수 선수 서 정 원 

당시에 벤피카 이적 동의서 축협이 발급만 해줬다면...

선수로써 서정원은 절대 단점이 없네 

그립다 그 시 절 날 쌘 돌 이  서 정 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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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크라머 감독님이 서정원 선수에 대해 많은 애정을 보였던 걸로 알려져 있거든요.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크라머 감독이 그런 말을 했어요. 자기가 지도하면서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경우는 처음이다. 우리 선수들한테 다 그런 얘기를 했어요. 자기는 팀 선수들을, 일개 나라의 선수들이 아니라 자기 아들들이라 생각한다... 그 정도로 얘기를 했었어요. 우리 앞에서 그런 말을 하고... 우리도 잘 따랐거든요. 게다가 수요일 날, 오전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휴식을 취하는데... 그때 용인 대우 연수원에서 합숙을 할 때였어요.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크라머가 운동을 오후에 쉬게 하면서 자비로 돈을 주는 거예요. 용돈을 줘서 자연 농원(현 애버랜드) 가서 놀다 오라고... 그런 식으로 우리 선수들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감탄할 일만 만들었죠. 사소한 일이지만 선수들이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크라머 감독이 절 주장을 시켰어요. 그때 어떤 일이 있었냐면.. 아 이거 안양하고 법정에 가는 일이 거기서부터 시작이 되요. 솔직히 지금 아무도 모르는데 제가 92년도에 대학교(고대)를 졸업할 시기인데 올림픽 때 독일로 합숙을 갔어요. 크라머 감독하고.. 프로에 가려면 드래프트를 넣어야 하는데 전 안 넣었거든요. 다른 선수들은 다 넣었지만... 근데 크라머 감독하고 팀이 거기서 한 달을 합숙하면서 게임을 많이 했을 때였어요. 그런데 합숙이 끝나는 전날에 저를 부르더라구요.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너 여기 분데스리가 올 생각 있느냐?”그래서 내 꿈이 그거라고 나는 이 유럽에 와서 축구를 하고 싶었다. 그랬더니 “그러면 너 계약 시켜줄까?” 그러더라구요. 그러면서 "실은 자기가 한국에 좋은 선수들이 있으니까 와서 봐라" 그래서 그때 명문팀 몇이 와 가지고 봤다는 거예요. 보고 난 후에 3 팀이 다 계약을 하자고 그랬어요. "너 계약할거냐".. 그래 가지고 "어 난.. 난 그럼 좋죠" 그랬더니 그럼 당장 지금 계약 할 사람 불러오라는 거예요. 나는 좋아 가지고.. 그랬었는데 크라머 감독이 그런 생각도 다 해준 거였죠. 어린 선수에게 "너 어느 팀이 와서 본다" 이런 얘기 없이 미리 와서 보게 하고.. 나중에 결정지을 때가 돼서 성사될 수 있도록 한거예요. 싸인 하라고 이런 식으로..

근데 "군이.. 군대가 있다" 그랬더니 그럼 "군 문제가 뭐냐" 물어 보는데 그 어린 나이에 군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이걸 그럼 김우증 회장한테 말하면 되냐" 이러더라구요.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줬죠. 암튼 그런 상황이었는데 안양이 꼴찌를 했을 때였어요. 안양에 고재욱 감독님이 있었는데 1순위를 해서 날 뽑아오려고 나중에 몇 게임 꼴찌를 하고 게임을 포기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드래프트를 빨리 넣으라고 안양에서는 독촉을 하고 나는 안 넣는다고.. 독일 간다고 그런때였어요. 그런 상황에 군 문제가 결부 된 거고 "아 이걸 어떻게 풀어야되나" 고민하는 상황에서 안양이 조건을 내걸었어요. 그때 드래프트를 보면 규정이 있었는데 3년 계약에 군대 문제 해결하고 다하면 되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나온거죠. 내가 드래프트 넣어서 안양에 가는 것으로 자기네는 3년 어떻게 해 가지고 맞춰 놓은거예요. 해외 이적을 시켜주겠다면서.. 지금 문제가 되는 이적료 50:50이 거기서 나온 거죠. 이적료 50:50으로 해주겠다 뭐 이런거까지 다 세부사항이.. 그게 지금 법정에 간 거고 근데 지금 딴소리가 나오는 거고, 그때부터 일이 그렇게 된 거예요.

 

 

Q : 그 당시 계약을 추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때 진짜 내가 후회 했던게 뭐냐면 그냥 계약을 했을걸 하는... 크라머 감독이 다음날 전화로 연락을 해서 그런 얘기까지 하더라구요. "그럼 군대가라" 바로 군대가면 월급까지 넣어 주겠대요. 그 팀에서 2년 동안 그냥 월급만 넣어주고 끝나고 와라 그럴 정도까지 해주겠다 는 거였어요. 아 근데 그거를.. 지금까지 그때 그냥 갈걸하고 후회하고 있어요. 그 후에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도 크라머 감독이 계속 연락하고 만나고 했죠.

 

 

Q : 그때 당시에 독일에서 서정원 선수를 영입하고 하는 팀은 어디였죠?

 

브레멘, 레버쿠젠, 뭐 한 3, 4팀 정도였어요.

 

 

이 부분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끝나고나서의 이야기 입니다. ..바르샤에서 입단 제의를 합니다.

 

 

Q : 서정원 선수는 올림픽에서의 활약으로 바르셀로나에서 입단 제의가 있었다고..

 

맞아요. 스웨덴 마지막 게임 끝나고 제의가 들어왔어요. 경기 끝나고 들어왔는데 기자들이 많이 들어오더라구요. 왜 그럴까 하는데 막 후레쉬 터지고... 그때 지금 스포츠 조선에 신상돈씨가 계셨는데 사진 찍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진기자가 없으니까 그 쪽 사진사들에게 사진 필름 달라고.. 돈 줄 테니까.. 그랬던 기억도 나는군요.

그때 바르셀로나 제의가 있었어요. 언론에 일면으로 올림픽기간에 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때 LG 문제가.. 결국은 역시 군 문제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죠. 그때 바르셀로나 구단에서 몇 번 데리러 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몇 번 가서 식사도 하고 협상하고.. 어떻게 되는 거냐 묻고 그랬었는데.. 상당히 좋은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그럼에도 못 갔던... 안타까웠던 일이 몇 번 있었죠.

 

 

Q : 이후에 해외 진출을 노리던 중에 포루투갈의 벤피카에 입단을 확정지었지만 다시 한국에 돌아오셨죠?

 

거의 확정이 됐었죠. 그때는 90년부터 얘기가 있었거든요. 벤피카에서... 그 전에는 군.. 솔직히 그 당시에는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뭐랄까요. 어쩔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솔직히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도 몇 개 팀에서 얘기가 있었는데 군인이기 때문에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움직이지를 못하니까 아예 그냥 좌절 됐었고... 군대가 끝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진행이 되었었죠. 벤피카라는 팀이 와 달라고 해서 제가 가가지고 이적이 다 됐었어요. 팀에서 제 배번도 다 나왔었고, 모든 장비도 다 준비됐었죠. 9번이었던 그때 그 유니폼 지금 집에도 있어요. 근데 그때가 97년이었어요. 98월드컵 전이죠. 차범근 감독이 할 때인데.. 예선전 막 들어가고 할 때였어요. 근데 벤피카가 기존의 소속된 포루투갈 대표팀의 선수를 많이 교체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조건이 월드컵 예선전을 좀 빠질 수 없느냐.. 팀이 상당히 쳐져 있으니까 끌어올려야 하니 3개월 정도.. 그러고 나면 월드컵 나갈 때에는 확실히 풀어주겠다. 예선전은 충분히 돌파할 수 있으니까.. 좀 해달라면서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죠. 예선전을 못 뛰겠금.. 그럼 당연히 그걸 못 해줄까 하는 생각에 축구협회 통보하고 구단에 통보하고 싸인만 남겨놓고 있었는데 차범근 감독이 안된다는 거예요. 예선전을 뛰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축구협회에서 이적 동의서를 발급을 안 해줬죠. 이적동의서 발급이 안되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죠.

 

 

Q : 벤피카 입단 결렬 후에도 독일 진출도 성사 직전까지 같다가 결렬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FC 쾰른에서도 절 사겠다고 들어왔는데, 그때는 LG에서 브레이크를 걸었어요. 이적료가 적다고... 그때 이적료를 한 60 만불을 준다고 했거든요. 그럼 나는 이적료를 내가 아까 얘기했듯이 이적료 50:50 조항이 있으니까 그럼 난 이적료를 조금만 받더라도 나가겠다. 아니면 50%도 난 안 받겠다. LG가 60만불의 이적료 100% 다 받아라. 그럼 100만불 받은거나 똑같은 거 아니냐.. 우리는 이런 식이고 LG는 일부러 안 내보내려고 작정을 했었죠. 안된다.. 그래서 또 못나가게 된거죠. 그래서 계속 LG랑 싸우고 그러다가 스트라부르스로 가게 된거예요.

 

 

Q : 결국은 프랑스로 진출하게 되었는데요. 릴과 입단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가 스트라부르스에 선회한 계기는?

 

릴이 스카우트 하겠다고 들어와서 갔는데, 거긴 또 2부에요. 지금은 1부지만 그때는 2부였기 때문에 안 한다고 했어요 나 2부에서는 하기 싫다 이랬었죠. 근데 2부에서 2위인가 1위를 하고 있었어요. 거의 후반에 1부로 올라갈 단계였었고 해서 고심을 할 때였어요. LG에서는 그럼 몇 개월 만 있으면 다음 시즌 때는 1부로 가니까 있어도 된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적료를 바로 못 주고 처음에 50만불 주고, 다음에 70만불 주고 이런 다니까 스톱을 걸었죠. 그러니까 릴에 스카우트를 담당하는 사람이.. 스트라부르스의 재정담당 친구가 있어요. 그 사람 이름이 샬리샤므아인데 이 사람이 스트라부르스에 연락을 한 거예요. 직접 "야 이 선수 이런데 니 네 꼭 해라" 한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상상도 못하고 있는데 "그럼 1부리그인 거기와는 계약할래?" 하면서 그 사람이 소개 시켜줬죠. 자기 말로는 '정말 아까운 선수다 그럼 니네가 계약을 해라' 그래서 스트라부르스하고 그 다음날 바로 구단에 들어가서 계약을 하고 그리고 온 거죠.

 

 

Q : 안양에서도 그때는 어쩔 수가 없었나 보죠?

 

그렇죠. 거기서 돈을 마니 준다고 하니까 오케이 한거고...

 

 

Q : 일련의 해외진출 과정에서 서정원 선수는 해외로 나가려고 하고 차범근 감독은 소집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반대를 많이 했던걸로 알려져 있는데 불화는 없었습니까?

 

차 감독님한테는 월드컵이라는게 있으니까.. 나가 있으면 솔직히 예선전이나 중요 경기를 못 뛰니까.. 거기에다가 차 감독님이 경질설이 있었어요. 바꿔야된다는 말이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에 있었고, 그러다가 저는 스트라부르스로 가게 되었고.. 그러던 중에 한일전이 있기 전에 감독님이 직접 왔어요. 스트라부르스에서는 게임이 있어서 차출 못해 준다고 해서 차 감독님이 직접 우리팀에 와 가지고 좀 보내달라고 해서 2:1로 이길 때 와서 게임 뛰었던 생각이 나거든요. 그때 말이 좀 많았어요.

 

 

Q : 그런데서 갈등이 발생하면서 차범근 감독이 이상윤 선수를 중용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서정원 선수 기용에 있어서 다소..

 

아무래도 좀 미우셨겠죠. 뭐 그렇다고 해서 감독님이시니까.. 하여튼 그러다가도 일단 게임장에서 나를 원하면 불러서 운동장에 내보내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크게 의식은 안 했는데... 뭐 다음부터는 계속 나가서 예선전도 하고 했죠.

 

 

Q : 당시 인터뷰에서 입단 테스트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라고 얘기를 할 정도로 입단 테스트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국내 선수들은 입단 테스트는 자존심을 앞세워 안 받을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때는 우리 나라 선수가 유럽에 나간다는건 가능성이 좀 희박했어요. 많이 힘들었고 차범근 감독님이야 유일하게 특출난 분이셨고 그런 와중에.. 예를 들어 이렇게 생각하면 되죠. 동남아 필리핀, 태국선수를 우리나라 프로팀에서 스카우트 한다는.. 이런거랑 똑같아요 유럽에서는 우리나라 선수를 거창하게 스카우트 제의하고 그럴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뭐가 걸림돌이냐면 스카우트는 충분히 할수 있는 선수들인데 이적료가 많은거예요 이적료가 한국에서 오는 선수들이 왜 이렇게 이적료를 많이 달라고 하느냐. 일반적으로 남미나 구라파쪽에 그런 선수 무지 많거든요. 그런 선수들도 다 유럽에 처음 올때는 이적료가 100만불이니 150만불이니.. 그때 당시에는 그렇게 주고 오는 선수가 없었어요. 호나우두 같은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때는 15만불 받고 온 선수예요. 중국선수들이 영국에 많이 나가는 이유가 이적료도 없이 나가서 연봉도 조금 받아요. 1억. 우리나라 돈으로 한10만불 뭐 그렇게 받고 나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팀들은 싼 선수들 일단 데려다 쓰지 뭐. 그런 식이었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이적료 150만불 100만불 달라고 하니까 와서 보여달라 이거지 한번 보자.

 

 

Q : 입단 테스트는 보통 어떤식으로 진행되었나요?

 

입단테스트는 똑같아요. 그냥 같이 훈련하고 게임 뛰고.. 뭐 이런 정도. 저는 몇 군데 가 봤는데 전부 OK를 했었어요. 전부 다 OK를 받는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OK를 받았는데 이적료가 문제가 되는 거예요. 이적료를 어떻게 할거냐. 그 싸움에서 안됐고 아니면 그럼 임대로라도 보내 달라 그러면 안양에서는 자꾸 브레이크를 거는게 이적료는 조금이라 안되고, 임대도 안되고, 자꾸 그래서 나를 안 내보내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죠.

 

 

 

Q : 처음 프랑스에 진출하였을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때... 진출했을 때는 그 동안 꿈꿔왔던 거니까.. 상당히 좋았죠. 바로 데뷔전 할 때부터 골을 넣었고, 연속 골을 넣기도 했고... 일단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국제 경기도 많이 했었고 충분히 할 자신이 있다... 그런 걸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응을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갔을 때가 거의 후반기였는데 팀이 13위, 14위쯤이었어요. 2부로 막 떨어 질랑말랑 할 상황이어서 게임에 계속 나가면서 골도 넣고 하다 보니까 인기가 많아 졌었죠. 왜.. 세오 그랬던 건 관중들이 다 제 이름을 부르고 그랬던 거 거든요. 프랑스의 관중들이 태극기를 막 이상하게 바꿔 가지고 그려 오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저도 너무나 기분 좋았고 우리 와이프도 기분 좋았구요.. 그 당시에 정말 잘 했어요. 마지막 게임에서는 골 넣어서 우리가 2부로 안 떨어지게 되었었죠.

결국 1부에 남게 되고 다음 시즌에 딱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는 대우가 엄청 달라졌어요. 너 번호 갖고 싶은 게 뭐야? 11번이라니까.. 11번도 주고, 이제 그 팀 홍보를 하잖아요. 그때 당시에 거기 프랑스 대표 선수 한 명이 있었어요. 그 선수하고 저하고 팀 연간 회원권 홍보에 등장하게 되는 등 팀의 간판도 되었구요. 스트라스부르 시내에는 대형 간판으로 제 얼굴이 나가기도 했어요. 스트라스부르 시내하고 주위 지역에 전부 다 그 광고가 나갔죠. 그럴 정도로 상당히 인기가 있었거든요. 특히 꼬마 애들한테 인기가 있었고 어떤 때는 스트라스부르 시내를 걸어가는데 버스 기사가 가다가 얘기하기 위해서 차를 세우기도 했죠.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정말 유명인사가 되었었죠. 6개월 동안에 거기 교민들은 다 알게 되었구요. 거기 있으면서 무슨 뭐 예술 공연이나 전시회가 있으면 항상 초대장이 와서 저보고 오라고.. 집에 가면 매일 한 웅큼씩 와 있었어요. 이게 뭔지 몰라서.. 제가 알아야지 말이죠. 통역하는 애가 와야만 여기 초대장이고 저기 초대장인지 알게 되었었죠.

 

 

 

Q : 프랑스 내 유력 축구 월간지에 표지모델로 나왔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예. 표지 모델로도 등장 했었고 그 다음에 프랑스에 가장 유명한 스포츠 채널이 있어요. 가장 많이 보는 프로에 그때 특집으로 우리 아들.. 우리 가족하고 제가 출연 한 적이 있었구요.

 

 

Q : 프랑스 국가대표팀 대 올스타의 자선경기에 참여하기도 하셨죠? 현지에서는 인기가 있었지만 국내에 알려지는건 좀 미흡한 면도 있었는데요.

 

그때 주가가 너무 뛰어 가지고 프랑스에서 프랑스 외국인 올스타에도 뽑히고.. 뭐 그때는 저기 뭐야.. IBM 그런 미국의 큰 매니지멘트가 프랑스에 파리에 있었는데 거기서도 오퍼가 들어오고 상당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모르고 묻혔던 게 상당히 많거든요. 여러 가지에 대해서 뼈저리게 많이 느꼈었고 아~ 축구가 이런 거고.. 아~ 정말 유럽이란 이런 거구나.. 저랑 와이프는 많이 느꼈어요. 그래 가지고 지금도 그 때가 생각이 많이 나요. 와이프는 그쪽에서 살았을 때.. 그리고 거기서 제가 축구하면서 보람이 있었던 거 같다고...

거기에 우리나라 교민이 많지는 않았아요. 유학생이 100~200명? 뭐. 사는 사람은 몇 십 가구.. 이 정도 아주 조그만 곳인데 한번은 교민들하고 만나게 되었어요. 거기 있으면서 조기 축구회도 제가 만들고 다른 모임에 한번 나가게 됐는데 어느 아줌마가 그러는 거예요. 너무 고맙다고 막 눈물을 흘리시더라구요.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유치원 다니는 자기 애가 하나 있는데... 거기 유럽 애들은 좀 동양애를 깔보는 게 있거든요. 대학생들도 그렇지만 많이 무시하고 그러는데.. 애가 막 유치원에 갔다오면 가기 싫다고 한대요. 나 안 간다고... 애들이 너 어느 나라야? 너 중국애냐? 라고 하는데 아니라고 하면 일본 애냐고 물어 본 대요. 한국 애 라고 하면 절대로 모른대요. 어린애들이 그렇게 무시를 당하고 있을 때인데 제가 가서 잘하고 하니까 여기 저기서 많이 나오게 되고 어~ 저 선수 세오라고 꼬마 애들이 다 알아보게 되었죠. 그니까 이제 그 애가 그러는 거예요. 너 우리나라가 세오 나라라고.. 세오랑 같은 나라라고 그랬더니 아~ 그러냐고.. 그때부터 애들이 잘해 주더래요. 그 아줌마가 울면서 자기는 나라를 찾은 기분이라고 너무 기쁘다고 그럴 때... 와이프도 그렇고 제가 축구를 하면서 이렇게 보람된 일을 할 수도 있는 거구나..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리고 거기 유학생들도 많이 무시 당했었는데 저 땜에 그래도 어느 정도 자신감 생기고 그렇게 했다는 얘기를 거기서 들었을 때... 축구를 통해서도 그런 걸 할 수 있는거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가장 기뻤죠. 거기에서...

 

 

Q : 한국으로 오고 난 다음에 스트라스부르 팬들이 서정원 선수를 잊지 못하고 편지도 많이 보내고 했다고 들었거든요.

 

유럽에는 싸인을 해서 보관하는 팬들이 되게 많거든요. 뭐 그래 가지고 유럽의 나라에서는 다 온 거 같아요. 영국, 스페인, 룩셈부르크 이런데서 왔었어요. 집에 가면 답장은 제가 와이프한테 이거는 꼭 해줘라 해 가지고 싸인 해서 붙여 준 것도 많았고 지금도 한 열 몇 장 못 붙여준 게 있어요. 집에서 저번에 책을 보다 보니까 있더라구요.

 

 

Q : 프랑스에서 진출해서 다른 팀과의 경기를 뛴 후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뭐랄까요. 우리나라 선수들은 기술은 안 뒤져요. 세계적인 선수들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는데 단지 여러 가지 외적인 문제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선수들이 외국 선수들하고 많이 경기를 안 해봐서 나오는 경험 부족이 있고 그 다음에는 자신감, 그리고 유럽에 운동장 사정이 틀리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운동장하고 유럽에 있는 잔디는 많이 달라요. 밑에 진흙이 진해서 약간 말랑말랑 하거든요. 쑥쑥 들어가고 비만 오면 완전히... 우리나라 땅하고는 천지 차이에요. 그러니까 패스부터 되게 빠르고 공이 오는 게 우리나라는 느린데 거긴 빨라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이번에 월드컵 하면서 가장 크게 플러스 되었던 부분이 운동장의 잔디 일수도 있어요.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축구 선수들이나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느끼고 있어요. 이런 잔디에 외국 선수들 적응 못할 걸... 분명히 적응 잘 못 할거라고.. 걔네들 운동장은 항상 촉촉하거든요. 이슬 내린 거처럼.. 이런 걸 보더라도 적응이란 게 상당히 힘든 거예요. 그런 것이 경기력으로 나타나 엄청난 차이가 나는거죠.

 

 

Q : 그 당시 리그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 중에 기억나는 선수가 누가 있습니까?

 

거기 있던 선수들.. 지금 기억이 다 나죠. 그때 같이 뛰었던 선수들 중에 올리비아 다쿠르 라고 미드필더의 흑인 선수인데요. 최근에 AS 로마로 옮겼는데 그 놈하고 제가 같이 뛰면서 친하게 지냈어요. 그놈이 그때도 잘했는데 영국 간다고 했었죠. 또 그때 맞상대했던 선수 중에서는 뭐 프랑스의 유명한 골키퍼 바르테즈도 있었었고-모나코에 있을 때죠. 아스날의 피레스도 그 때는 마르세유에 있었고, 또 윌토르.. 윌토르는 보르도에 있을 때 같이 경기에 나서고 그랬었죠. (상대편 선수 중에 저 선수는 내가 봐도 정말 잘한다.. 라는 선수가 있었어요?) 그때 피레스 보고 이 선수 되게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튀랑도 정말 잘했구요. 그 다음에 윌토르는 그 때 대표선수가 아니였거든요. 저 선수는 대표선수 되겠다 싶었는데 지금 아스날에서도 무척 잘 하고 있고...

그리고 블랑 하고 잘 알아요. 마르세이유에 있을 때 같이 뛰었거든요. 저번에 월드컵 때 스트라스부르 감독이었던 사람이 코치를 맡았거든요. 연락이 왔었어요. 만나자고 수원 구단에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래서 워커힐 호텔에 갔는데 블랑이 와 있었어요. 자기는 그냥 게임 보러 왔다가 이렇게 제가 지나가니까 절 알아보고 자기가 먼저 아는 체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만나고 감독하고 선수들 다 있는데서 같이 얘기하고.. 연락처도 지금 다 있고 프랑스 파리에 오면 자기한테 항상 연락하라고 해요.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죠.

제가 뭐 그런 거를 와이프도 그렇지만.. 저희끼리 가끔 얘기를 해요. 요즘 같았으면... 만약 지금의 이런 분위기에서 나가서 활약했으면 난리 났겠다 그런 얘기를 가끔 가다가 하곤 해요. 지금이라면.. 얘기 많이 나왔겠죠. 하지만 뭐 이런걸 괜히 얘기 할 것도 아니고 굳이 알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Q : 스트라스부르는 비교적 작은 클럽이라 할 수 있는데 특별하게 보고 배울 점이 있나요.

 

어우~ 많죠. 작은 부분일지라도 부러움을 많이 느꼈어요. 운동장이 잔디 운동장만 한 7개인 연습 구장.. 그 다음에 전용구장.. 너무 좋은 전용구장 가지고 있죠. 그 다음에 뭐 클럽 유소년 팀 있고 아마추어 팀 있고 너무 잘 갖춰져 있어요. 그 시스템이 너무 잘 갖춰져 있고, 너무 부러 웠던게 하나부터 열까지... 아 그니까 프랑스에서도 중위 팀이 이 정도인데 세계 유럽의 유명한 클럽들은 어느 정도 일까.. 하는 생각일 들었었죠.

 

 

Q : 좋은 활약이 있었음에도 팀 내 갈등으로 재계약이 불발되었는데요.

 

6개월을 성공적으로 했고 그때 저하고 같이 있었던 팀 감독이 98년 때부터 작년 월드컵까지 프랑스대표팀 코치로 있는 사람이에요. 나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러다 월드컵 대표 코치로 가면서 감독이 바꼈어요. 이제 제 불행이 온 거죠. 새로 온 감독은 카메룬 감독했던 사람 이였어요. 코치도 같이 2명이 오면서 선수들.. 카메룬에 있던 자기가 데리고 있던 선수들인데 8명인가 9명인가를 한꺼번에 스카우트를 한 거예요. 그래서 기존 베스트 멤버는 다 나가게 된 거죠. 그나마 남은 게 저하고 프랑스 대표였던 선수해서 단지 두 명의 간판만 남았어요. 저는 게임에 못나가고 팀은 계속해서 지게 되었는데 제가 어떻게 게임에 나갔냐면 관중들이 막 제 이름을 경기 중에 외쳤어요. 나오라고 막 외치고 해서 제가 운동장에도 나가서 뛰고 그랬어요. 그때부터 불화가 계속 된 거에요. 그때 막 언론에서 왜 안뛰냐.. 그렇게 잘했던 선수인데 그런 얘기가 엄청나게 심했었어요. 우리나라에는 많이 안 알려졌지만 거기서는 상당히 심했었죠.

그렇게 있다가 팀 내에서 불화가 계속 커졌어요. 그래서 전 타 팀으로 가겠다고 해서 싸움이 시작 됐고 그 릴에 있던 사람이 그쪽 재정담당 했잖아요. 스카우트 담당인 이 사람이 제 매니저가 되고 싶어했었어요. 프랑스 시즌이 오프 되니까 자기가 그럼 내 매니저하고 싶다고 그러는 거예요. 다른 팀에 충분히 이적 시켜 주겠다. 그러다가 계속 싸우고 이적료 어쩌구 하다가 갑자기 수원하고 협상이 진행되면서 다시 국내로 잠깐 들어왔다가 식히고 나가자라는 그런 생각을 가진 거죠. 그래 가지고 안양하고 수원하고 고민하다가.. 안양은 솔직히 안가도 되지만... 첫번째는 솔직히 안양을 갈려고 했다가 예전에 싸웠던 그런 것도 있고 해서 안되겠고 수원에 오게 된 거죠. 맨 처음에 2년 계약했어요. 1년 후에 나가는 조건으로.. 1년 후에도 나갈 수 있겠끔 되 있었지만 왔다가 다치는 바람에 눌러 앉게 된 거죠.

 

 

 

 

 

 

 

Q : 그 당시에 다른 많은 팀들이 오퍼가 있었다라고 알려졌습니다. 발렌시아에서도 제의가 있었고 메츠에서도 영입 제의가 들어왔는데 많은 팬들은 계속해서 해외에서 서정원 선수가 활약해 주기를 바랬지만 결국은 수원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때 이적이 안 되었던 게.. 제가 제일 아쉬워하는 부분인데요. 제 매니저가 없었던 게 크게 작용했어요. 그리고 오프 시즌이었을 때 빨리 갔었어야 하는데 그때 막 팀에서 어떻게 할까 갈등 때릴 때였어요. 구단하고는 계약에 대한 얘기가 오고 갔지만 무시하고... 뭐 그때 독일에서도 제의가 왔었어요. 뮌센이랑.. 바이에른 뮌센이랑 우리가 게임을 했었거든요. 독일 팀에서 거기로 절 보러 왔었는데 그때는 이미 수원이랑 계약이 결정이 난 때였죠.

수원으로 결정하고 팀하고 계약기간이 한 한달인가 남았었어요. 스트라스부르에서 게임이 남아 있어서 저 보고 마지막 게임을 뛰어 달라고 요청을 하더라고요. FA 왕중왕 게임이었어요. 제가 계속 골 넣고 했더니 나중에 뭐래는지 알아요? 이미 수원하고 계약한 상태인데 나중에 한달 있다가 감독하고 단장하고 저를 부르더라고요. 그 통역하는 애가 빨리 들어오라고 해서 왜 그러냐고 그랬었죠. 전 그때 이미 수원으로 가기로 사인하고 다 끝난 상황이니까 막판에 남은 게임이나 딱 해주고 가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근데 들어오라는 거예요. 갑자기 재협상을 하자는 거야. 진짜로 무슨 협상이냐 했더니 다시 남아달래요. 그때 나 참~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냐고.. 다시 남아달라니.. 자기네가 이적료 다시 다 환불해 주겠대요. 아하~ 나 참! 근데 그때 상당히 싸웠거든요. 감독하고 그쪽 구단한테 신경질 나서 난 싫다고 난 계약 딱 끝났으니까 난 가겠다고 그땐 그랬어요. 와이프도 화가 났었고 그때 뭐 우리나라에서는 솔직히 잘 모르던 부분이고 뭐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와이프도 지금 마음이 아픈 게 유럽에서 계속 있었으면 하는데 너무 일찍 들어왔고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런 불화 때문에 들어온 게 너무 안타까운 거죠. 제가 축구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게 거기 있을 때 같아요. 그런 부분이 정말 안타깝죠.

수원을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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