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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수원 외국인 선수 되돌아보기 - 2009년 ①

CSW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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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2008년이 지나고 2009년에는 예산 삭감 소식과 더불어 주축 선수들의 이탈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즌 개막을 지켜보게 되었다. 

결과는 FA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리그 성적은 아쉬움이 남았고 AFC 챔피언스리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외국인 선수이다. 다른 이야기는 여기서 간략히 줄이며...

 

본론으로 들어가, 지난 시즌들을 돌아보며 외국인 선수들이 어떠했고, 많은 시간이 지난 2016년 오랜만에 이들을 평가하면 재밌을 것 같아 이 글을 작성한다.

 

본 글은 이들이 수원으로 오기 전 행적이 어땠는지(기존 외국인 선수는 지난 시즌에 대하여, 그리고 수원에서 활약상 또는 얼마나 못했는지를 이야기하고 현재 근황을 짤막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로 2009년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2009년 외국인 선수 일람

 

* 시즌 개막 기준

FW 9. 에두 

→ IN : DF 2. 알베스 / DF 5. 리웨이펑

 

* 여름 이적시장 반영

FW 9. 에두 / DF 5. 리웨이펑

→ IN : FW 23. 티아고 / FW 26. 산드로 히로시 

→ OUT : DF 2. 알베스

 

 

우선 2008년을 끝으로 주축 수비수 마토가 일본 아미야 아르디자로 떠나고 우승에 별다른 힘을 쏟지 못하던 먹튀 루카스는 브라질 어디론가 떠났다.

에두는 잔류하였고, 마토와 이정수 등 든든한 수비 자원이 모두 떠나버리면서 차범근 감독은 브라질에서 주가를 높이던 알베스를 영입하고 아시아 쿼터가 시행함에 따라 애제자 리웨이펑을 수원으로 부르기에 이른다.

 

 

2009년 시리즈의 1탄은 시즌 개막 기준 외국인 선수 3인방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FW 9. 에두

에두.jpg

 

지난 시즌 에두

 

기존 외국인 선수이다. 2008년 수원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미 K리그 무대에서 검증이 끝난 상태이다. 크게 걱정도 안 된 선수이고 2008년과 마찬가지로 수원 공격을 이끌 핵심 선수로 불렸고 이를 부정하는 팬도 없을 정도.

 

2009년 에두의 모습

초반은 좋았다... 시즌 개막하고 초반은 분명 좋았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난적으로 손꼽힌 가시마 앤틀러스와 경기에서 홍순학의 크로스를 받아 쐐기 골을 넣고 가시마 수비를 유린하는 모습까지 보인 데다가 이후 싱가포르 암드 포스와 경기에서 홀로 멀티 골을 넣고 2-0 승리를 이끌었기에 활약상이 이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정작 K리그에서는 공격과 수비 모두 조직력이 무너진 수원의에서 에두도 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었는지 점차 부진에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서동현은 무득점 스트라이커로 거듭났고, 여기에 기대주로 각광받았던 하태균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 선수들은 부상까지 잦아지게 되면서 에두는 거의 공격 진영에서 홀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태로 이르렀고, 상대 팀은 에두만 묶어 놓는 전략을 펼치게 되면서 에두는 답답한지 신경질적인 플레이도 늘어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에두는 대략 5월부터 부상으로 결장하게 되었는데, 부상 복귀 후에도 정상 컨디션은 아니었다. 결국, 6월까지 2골 3도움을 올리는 것에 그쳤다. 사족으로 에두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 본격적으로 가동된 투톱은(제대로 말하자면 4월부터 차 감독이 실험한 것으로 기억이 난다) 이상호와 배기종의 투톱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모습이었고, 무게감도 떨어졌다.

 

그리고 후반기에는 시리즈 2탄에 다룰 티아고가 에두의 짐을 덜어주면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모습이었는데, 그로 인하여 플레이의 질이 좋아져 공격 지역에서 무게감이 전반기보다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고, 시즌 말미에는 FA컵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16년 현재의 에두

 

2009년 시즌 종료와 함께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하였고, 중국 일본 등을 거치다 다시 K리그로 왔다. 뭐... 길게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올해 이슈 메이커로 대활약(?)을 하였기에

 

 

 

DF 2. 알베스

알베스.jpg

 

 

 

수원 입단 이전까지 알베스

 

수원 입단 전까지 커리어는 상당히 화려하다. CR 바스쿠 다가마라는 축구팬이라면 한 번씩 들어봤을 법한 브라질 전국리그의 강호에서 주장직을 수행한 선수인데, 바스쿠 다 가마로 이적한 것은 2006년이고 그 전에는 군소 팀에서 뛰다가 실력을 인정받고 강호 인테르나시오나우에 입단했다가 주전 경쟁에서 밀려 바스쿠 다가마에 온 선수이다. 바스쿠 다가마에서는 두 시즌 동안 정규 주전으로 활동하며 기량을 인정받은 전성기가 온 선수였으며, 2008년에 주장에 선임되기도 했으나, 바스쿠 다가마는 부진을 겪고 그해 시즌 종료와 함께 전국리그 세리 B로 강등된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근데 사실 이런 것은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브라질 전국리그 세리 A가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유명한 팀들도 자칫 잘못하면 강등되는 것이 이 리그의 현실이라, 뭐 "강등맨"을 데려왔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었다. 정작 가장 문제 되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이중 계약이었다. 정황을 설명하자면, 바스쿠 다가마에서 시즌 종료와 함께 알베스는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는데, 여러 팀을 조율하다가 2009년 1월 말경에 포르투갈 리가 종 사그르스의 하위권팀 파수스데페헤이라에 입단한 것. 근데 수원 입단은 2009년 2월 초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파수스데페헤이라에 입단을 확정 짓고 입단식까지 가지고 팀 훈련까지 다 합류한 상태에서 알베스의 에이전트 회사가 알베스에게 온 수많은 오퍼를 손보다가 액수가 더 컸던 수원으로 강제 이적시킨 것이다. 여기에 알베스는 파수스데페헤이라에 남고 싶어 했으나, 에이전트 측은 알베스를 팀 훈련에 참가 못하도록 하고 수원으로 보낸 것이다. 여기에 알베스 에이전트 측과 파수스데페헤이라와 사이에 법적 공방전이 벌어질 기미가 보이기도 할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는데, 결국 선수 미래를 생각해 준다는 파수스 측의 판단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작성자가 풋케위키에 기여한 알베스 항목의 "이중 계약논란" 항목 참고. 

http://footballk.net/mediawiki/%EC%95%8C%EB%B2%A0%EC%8A%A4

 

※ 주의 : 포르투갈어 기사를 영문으로 바꾼 뒤 번역하기에 오역과 실제와 다른 부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수원에서 알베스는

 

결국, 자기 의사보단 에이전트 측의 농간(?)으로 수원에 입단했는데, 뭐 입단식에서는 "잘할 것이다" '기대해 달라"라는 식으로 상투적인 이야기를 했으나, 영혼 없는 말일 뿐이었으며 마토의 빈자리를 채우지도 못하고 수원 수비의 빈 구멍을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 별일을 다 겪은 알베스는 차범근 감독 전술에 적응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차범근 감독이 초기에 구상한 백스리 전형은 삼개국이 모두 뛰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는데, 국내 수비에 곽희주나 최성환이 나오고 거기에 중국 국적의 리웨이펑과 브라질 국적의 알베스가 한 곳에 뛰는 상황이었다. 조직력은 당연히 콩가루였고, 알베스는 경기에 나오면 홀로 상대 공격수 잡겠다고 돌진하다가 그 공간을 내주는 아찔한 수비를 펼치면서 몇 경기 못치르고 전력외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후 6월이 넘어서야 울산과 경기에서 선발 명단에 복귀해 조금 팀에 녹아들고 피지컬과 공중볼을 겸비한 모습으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이 경기 이후로 팀에서 불화를 일으켰다는 카더라 통신과 함께 계약 해지로 여름 이적시장에서 브라질로 돌아가고 말았다.

 

 

현재 알베스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알베스는 아직도 현역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알베스는 브라질 전국리그 3부에 해당하는 세리 C의 톰벤시 FC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사커웨이 기록상으로 현재까지 18경기에 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에는 논란을 남긴 포르투갈 무대로 돌아갔는데, 석현준이 활동한 것으로 유명한 비토리아 세투발에서 2012-13시즌 활동하기도 했다. 

 

알베스에 대해서 결론은 내리자면, 과거와 현재까지 거쳐온 것을 보면 기량 자체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선수였으나, 수원에서는 최성환과 장단점이 모두 비슷한 모습에 실전에서는 최성환 보다 더 부족한 모습만 보이고 말았다. 이러니 더 두고 볼 필요도 없을 수밖에... 그나마 알베스가 준 업적이라고는 구멍난 수비 자리에 신예 이재성의 발굴로 안구 정화를 했다는 것과 무명 선수였던 허재원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 것이었다. 두 선수 모두 알베스가 떠난 뒤인 7월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선수로 활동하였는데, 그냥 수원에서 2009년 활약만큼은 알베스보다 더 나았다.

 

 

 

DF 5. 리웨이펑

 

리웨이펑.jpg

 

 

 

수원 입단 전 리웨이펑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수에 차범근 감독의 애제자로도 유명했다. 인연은 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다듬어지지 않았던 리웨이펑을 발굴하고 중국 대표 선수로 거듭나게 한 것에서부터였다. 이를 계기로 리웨이펑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활동하고 2002-03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에버턴으로 임대 이적하기도 했는데, 당시 대표팀에서 리웨이펑과 마찬가지로 명망 높았던 순 지 하이가 잉글랜드 무대에 먼저 연착륙한 것과 반대로 리웨이펑은 한 경기에만 출전하고 말면서 스폰서빨로 입단한 선수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로는 중국에서 쭉 뛰었다.

 

그러나 리웨이펑은 실력보다 다혈질적인 성격 싸움판에 꼭 있고, 중국 리그에서도 퇴장을 수없이도 당하는 통에 국내에도 인식이 안 좋은 선수 중 하나였다. 리웨이펑의 엄청난 업적은 일본과 경기에서는 목조르기, 대한민국과 2004년 동아시안컵에서도 거친 플레이로 퇴장과 이전에는 이을용이 을용타라는 합성 소재로 거듭난 경기에서 안정환과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비호감의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던 리웨이펑은 수원에 입단하기 1년 전인 2008년, 전반기 동안 상하이 선화에서 전력 외로 밀려나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다가 이후 중국 슈퍼리그의 우한 광구에 입단하게 되었는데, 출전 두 번째 경기에서 난투극에 주역으로 활약하게 되면서 갖가지 징계와 더불어 소속팀 우한 광구는 다소 편파적인 징계에 불복하다가 강등 처분을 받고 해체하고 말면서 미아가 될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물론, 리웨이펑이 전성기 시절 경기력을 지니고 있고, 크게 말썽만 피우지 않는다면 중국 내에서도 그를 노릴 팀은 많았겠지만, 당시 퇴물 소리를 듣던 데다가 거의 망나니에 가까운 리웨이펑은 은퇴나 하라는 비아냥을 듣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수원에 입단한 리웨이펑

 

그러나 아무도 데려갈 리 없다는 그 리웨이펑을 수원 차범근 감독이 영입했다. 당시 2009년은 아시아 쿼터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하였는데, K리그 각 구단은 의욕적으로 젊고 유능한 선수를 찾아 팀에 입단시켰으나, 수원은 전성기가 지난 그것도 중국에서 사고뭉치를 데려온 것이었다. 입단은 위에 나온 알베스와 같은 날 진행되었으며, 입단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리웨이펑의 화려한 업적(?)으로 우려와 악평, 그리고 직설적으로 망한 영입이라는 소리가 솔솔 나오게 되었다. 지금 와서 보면 웃긴 일이지만, 알베스는 오히려 마토 후계자급 대어 선수로 불린 상태...

 

이렇게 첫 경기도 치르지 않았는데도 악평 듣고 있었던 리웨이펑은 홍콩 구정컵에 나서서 체코의 스파르타 프라하와 경기에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화룡점정이 되고 만다. 팬들은 저런 수비수로 어찌 한 시즌을 버티냐고 한숨을 쉬었고, 차범근 감독은 그래도 자신의 애제자를 믿는다는 언급을 하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그렇게 시즌이 개막했다. 리웨이펑은 AFC 챔피언스리그 1차 경기인 가시마 앤틀러스와 경기에 출전하였는데, 프라하와 경기에서 보여준 허접한 수비를 보이지 않고 시종일관 공중볼을 놓치지 않는 모습에 동반 출전한 알베스보다 더 단단한 모습을 보이며 가시마의 골문을 여는 선제골을 기록하고 엠블럼 키스까지 하는 모습으로 수원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리웨이펑은 자신의 활약으로 가시마와 경기를 4-1 대승으로 이끌었으며, 차범근 감독의 신뢰에 보답함과 동시에 팬들의 지지까지 얻게 되었다.

 

그러나 K리그에서 전반기 동안 극심한 부진을 겪은 수원은 삼개국 수비의 막장 조직력에 리웨이펑 역시 가시마에서 강한 인상을 남겨준 뒤로 K리그에서는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스피드에 약점을 보이면서 무너진 수원 수비 라인에서 리웨이펑도 전반기 동안 크게 힘을 못 쓰고 말았다. 그나마 리웨이펑은 투지로 악착같이 막는 모습을 보이면서 열심히 뛰는 게 대놓고 보였기에 평가는 좋았으며, 주장에 선임된 이후 부담감에 부진에 빠진 곽희주와 망한 알베스에 비해 가장 정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기에 이렇게 전반기 활약이 그닥이었음에도 팬들의 지지는 열렬했던 편. 

 

이후 수원이 후반기 들어 전력을 재정비하면서 조직력이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는 수비 전술의 중심이 리웨이펑으로 변한 것이 한몫하였고, 그런 이유로 특색 없는 수비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잡혀나갔다.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특정 색깔이 나온 뒤부터 수원은 후반기에 중요 경기에서 승점 3점을 챙겨오고 FA컵에선 쟁쟁한 팀을 물리치고 우승을 하는 역사를 쓰게 되었다. 여기에 리웨이펑의 수비 역할이 컸으며 리웨이펑 역시 FA컵 우승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시즌 초반에는 욕만 먹던 선수가 가장 사랑받는 선수가 되었다. 리웨이펑은 은사 차범근 감독 아래에서 지난 시절 보여준 문제아 기질을 자제하고 오히려 신경전이 나면 사태를 정리하는 리더십까지 보이며 성숙한 모습을 통해 개과천선 했다는 평가를 수원팬이나 타팀 팬들 모두에게 받게 되었다. 리웨이펑은 수원의 핵심 선수가 되었으며, 2010년에도 잔류하게 되었다.

 

 

현재의 리웨이펑

 

리웨이펑은 2015년 9월부로 은퇴하여 중국 갑급리그의 톈진 쑹장에서 행정가로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웨이펑은 수원을 떠난 2010년 이후에는 중국 슈퍼리그의 톈진 터다에 입단하여 오랜 시간 활동하였으나, 선수로 고령의 나이가 발목을 잡아 리빌딩 대상이 되어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리웨이펑은 수원을 떠난 뒤로 시간이 나면 수원을 방문해 애정을 보였으며, 팬들은 "리웨이펑 짜요"로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2009년 1부 끝.

 

2009년 2부에서는 티아고와 산드로 히로시를 다룹니다!

 

 

출처 및 몇 가지 전하는 말

- 풋케위키 본인 작성 내용 참고와 다른 분 작성기여 글 몇 부분 참고했으며, 기억에 의지한 부분도 상당 부분 됩니다. 그러한 이유로 몇 부분은 여러분이 아시던 내용과 다를 수 있으니, 너무 이 글을 정통한 글로 보지 마시고 재미용으로만 참고해 주세요~

 

 

 

 

 

 

 

 

CSW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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