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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수원 외국인 선수 되돌아보기 - 2006년 후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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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전반기. 

전반기 수원은 2005년부터 계속된 부진을 탈출하지 못하였다.

부진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으나,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는데, 차범근 감독은 여름 이적 시장에서 제일 처음으로 외국인 선수 대수술에 착수하였다.

차범근 감독이 제일 문제로 여긴 것은 아마도 외국인 공격수가 아닐까 한다.

 

전반기 외국인 공격수는 2000년 수원에 입단해 고-데-로 트리오의 한 축으로 활동한 산드로 카르도수(이하 산드로)와 2003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해 첫 시즌 23골을 넣어 인지도를 올렸으나, 십자인대 부상과 이기적인 성격으로 겉도는 선수로 전락한 이따마르가 있었다.

 

이들은 전성기가 지날 나이는 아니었음에도 컨디션이 매우 떨어져 버린 탓에 공격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교체는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2005년 입단한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출신 마토의 기량에는 큰 문제가 없었기에 외국인 공격수 교체는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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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외국인 현황)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이들의 후반기 활약상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수원으로 오기 이전과 이후로 나눠서 이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 봤다.

 

 

 

DF 2. 마토

수원에 오기 전, 마토의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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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크로아티아 국가대표로 아일랜드와 경기에 나선 마토.  ⓒ게티이미지)

 

프로 경력 시작은 2000년 유소년 팀을 보내온 HNK 오라셰에서 시작하였다. 이 클럽은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적의 팀이긴 하지만, 크로아티아 인접에 있기도 하며, 마토 어렸을 적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한 나라였기에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로아티아의 NK 오시예크에 입단하였다.

 

오시예크에 입단한 마토는 첫 시즌인 2000-01시즌부터 24경기에 출전하였고, 2득점을 올리는 활약으로 수비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다고 한다. 당시 오시예크의 리그 순위는 3위를 기록했는데, 신인 수비수가 주전으로 출전하면서 이런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면 크로아티아 축구계가 주목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프로 무대에 연착륙하면서 국가대표팀 커리어까지 시작한 그야말로 탄탄대로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촉망받는 선수는 K리그도 마찬가지겠지만, 강팀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그렇다. 마토 역시 중상위권인 오시예크를 떠나 2002-03시즌에 크로아티아의 대표적 명문 팀 하이두크 스플리트에 입단하였다. 여기서 한번 정리하자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부 리그 중위권 팀 → 크로아티아 중상위권 팀 → 크로아티아 최강팀 

 

이렇게 거친 것이고, 프로 데뷔 1년 만에 국가대표팀에 선발되고, 약 2년 만에 쟁쟁한 선수들만 모이는 리그 최정상급 팀에 입단한 것이다.

 

마토가 수원에 오기 전까지의 발자취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아마 중국 슈퍼리그에서 거액의 이적료로 입단시켰을 것이다...

 

 

수원에 입단한 마토 

2005년 입단했다. 당시 수원은 무사라는 아르헨티나 수비수가 있었음에도 마토의 영입 소식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2005년을 스킵하고자 하는데, 내가 2006년 전반기까지 축구를 못 봤기 때문이다..(이 글이 2006년 후반기만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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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2006년 후반기 마토는 여전히 수비 핵심이었고, 공중볼 능력은 물론, 안정적인 빌드업까지 겸비한 대형 수비수였다. 갖춰야 할 수비 덕목을 모두 갖춘 선수로 기억되며, 스피드가 느린 것이 약점이었으나, 위치 선정이 좋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파트너 수비수인 곽희주, 이정수, 이싸빅과 호흡도 부족한 게 없는 완전체인 선수.

 

2006년 기준으로 두 시즌이었으나, 차범근 감독 축구에서 마토는 절대적인 위치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상대 팀들이 마토한테 크로스를 쉽게 내준다고 느낀 적이 많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상대 팀이 크로스를 어찌 올리던 마토가 그냥 다 알아서 처리해 준 것이었다. 이러니 절대적일 수밖에.. 2006년 전반기에 부진은 전체적으로 다 무너진 상태였기에 마토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반기에 대대적인 보강으로 스쿼드 밸런스가 맞아가자 마토의 위엄이 되살아난 것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다.

 

(마토는 2008년 시즌을 끝으로 수원을 떠나고 2011년 복귀했기에 이후 행적은 다른 시리즈에서..)

 

 

 

FW 9. 올리베라

수원에 오기전까지 올리베라의 행적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진짜" 주인공들은 마토가 아니고 올레비라와 실바이다. 실바는 조금만 더 내리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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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멕시코 크루즈 아술에서)

 

 

올리베라는 우루과이 출신으로 우루과이의 다누비오 FC에서 2001년부터 프로 선수로 활동했다. 다누비오에서 2004년까지 109경기에 나서서 총 39골을 넣었다고 하며, 2004년에는 아르헨티나 1부 리그의 산 로렌소에 임대를 떠나기도 했다. 

 

이후 2005년에는 멕시코 크루즈 아술에 진출해 2경기 2골을 넣기도 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로 바로 임대를 떠나 9골을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6년에는 친정팀 다누비오로 돌아와 활동했다.

 

기록만 보면 정~말 괜찮은 선수다. 키도 191cm나 되는 장신이기도 하며,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팀을 거친 경력도 있고..

 

그러다가 깊은 부진에 빠져있다가 부활을 노리는 아시아의 한 팀과 연결되었는데..

 

시원하게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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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전이지만, 입단식 맞나 싶다.. ⓒ수원삼성블루윙즈)

 

올리베라는 그렇게 수원에 입단하였다. 당시에 우루과이 특급이나 검증된 외국인 등 이런 좋은 수식어가 많이 붙었다. 실제로도 올리베라가 프로 데뷔하고 약간 떠돌아다닌 것 빼고는 경력상으론 그렇게 나쁜 선수는 아니었기도 했으니.

 

문제는 이적료다. 정확히 알려진 것만 해도 최소 30억이라는 소리가 있다. 그래도 잘하면 장땡이니까 괜찮고, 산드로 이따마르와 같이 뭉그적대는 외국인들 때문에 수원팬들도 속이 터질 지경이었으니 거액의 이적료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첫 경기에 상암 원정 경기에서 수비 두 명을 그야말로 허수아비로 만드는 볼컨트롤과 어떤 키퍼도 막을 수 없는(아마 김병지로 기억) 완벽한 왼발 감아 차기로 데뷔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이를 보고 많은 수원 팬들은 드디어 우리도 대박 공격수 하나 건졌다고 환호성을 질렀고, 이후 경기에서 초반부터 3골을 더 넣어 비싼 이적료 값을 하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올리베라는 점차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여 아무것도 못 했다. 

 

초반은 좋았으나, 경기에 나서면 전방에 볼을 받고 계속 상대에게 헌납하는 플레이를 하였고, 자신감이 떨어졌는지 자꾸 사이드로 빠져서 답답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돈이 아까워서 경기에는 꾸준히 출전했으나...

 

점차 30억짜리 허수아비로 거듭나는 올리베라를 보며 차범근 감독은 물론, 수원 팬들도 인내심을 빠르게 잃어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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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억 선수의 경합 ⓒPAW Photo)

 

 

과거 차범근 감독이 올리베라에 대해 했던 코멘트를 인용하자면,

"올리베라는 키핑력이 떨어져 활용하기가 어렵다"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이는 누구나 봐도 공감하는 문제점이었다. 더욱 문제는 191cm이지만 헤딩을 너무 못하고 굼뜨기까지 했다.

 

게다가 차범근 감독 전술 아래에서 포스트 플레이 후 키핑은 꼭 필수 조건이었는데, 뭐 둘 다 못하는 선수이니...

 

결국, FA컵 결승전을 앞두고 2군만 출전한 전북 현대와 시즌 종료 무렵 경기에 당당히 선발 출전해 비싼 2군의 자격으로 페널티 킥 골을 넣어 시즌 5득점으로 마무리했다.

 

 

그 이후 

이런 선수를 어디다 쓸까?

 

당연히 방출이었다. 2007년 시즌을 앞두고 올리베라는 중국 슈퍼리그의 산시 바오룽(現 베이징 런허)으로 보냈다. 여기서 정확지 않은 소문이긴 하지만, 몸값이 상당해서 이적시키지 못하고 임대로 보냈다는 소리도 있다. 근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처분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으니. 게다가 수원은 에두를 영입을 일찍이 확정 지으면서 임대건 뭐건 애당초 올리베라를 더는 쓸 생각이 없다고 대놓고 표시하기도 했다.

 

이후 중국에서도 망했다. 그리고 파라과이로 건너갔는데 거기서도 망했다. 심각한 망조가 들면서 우리 입장에서는 먹튀였음에도 개인적으론 참 안타깝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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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에서 부활한 올리베라)

 

그래도 반전의 계기는 있었다. 2009년 올리베라는 과거 2005년에 잠시 활동한 바 있는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에 입단했는데, 거기서 첫 시즌부터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 2009년 칠레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타며 부활하였다. 올리베라는 2010년까지 42경기 37골을 넣는 미친 활약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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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근황)

 

칠레의 활약은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되어 현재 2017년까지도 잘나가는 선수의 위용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올리베라도 이팀 저팀 옮겨 다니는 선수라 2010년 이후 거친 팀들을 나열하자면 분량이 너무 길어져서 생략하지만, 중동, 브라질 전국리그 1부, 아르헨티나 등을 거쳤고, 우루과이에선 페냐롤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특히 중동 시절인 2010년에는 알샤바브 소속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전북하고 성남한테 골을 때려 박으면서 K리그에서 망한 것을 만회하기도 했다. 

 

현재는 프로 데뷔팀인 다누비오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으며, 나이가 있기에 활약도는 점차 떨어지지만, 팬들한테 사랑받는 선수라고 한다.

 

올리베라가 각성하게 된 계기는 망조가 든 이후 칠레로 가면서 경기 스타일을 바꾼 것이었고, 그 이유로 포텐이 폭발했다고 한다. 수원 시절처럼 몸싸움을 기피하거나 그런 것 없이 자신의 키를 살려 헤딩이나 포스트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하는 유형으로 정착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기술적인 면에만 집착하는 모습이었는데, 현재는 그냥 몸으로 들이대는 타입이라고 하면 정리가 빠를 것이다.

 



FW 10. 실바

 

수원에 입단하기 전까지 실바는

나름 괜찮은 선수였다고 한다. 프로 데뷔는 브라질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했으며 1997년에 가시와 레이솔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포르투갈 1부 리그에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브라가와 스포르팅 CP와 같이 인지도 있는 클럽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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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피카와 경기에 나선 실바)

 

 

뭐, 대략 리그를 평정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준수한 실력을 바탕으로 그럭저럭 리그 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선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바에게는 큰 문제가 있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부상을 달고 살았고, 그런 이유로 컨디션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한다.

 

2006년에는 포르투갈 무대를 떠나 당시 잉글랜드 2부 리그 소속이었던 더비 카운티에 입단했으나, 부상 문제로 몇 주 안돼서 방출당했을 정도라고...

 

부상으로 짧은 잉글랜드 진출을 끝내고 브라질로 돌아가 알라고아누 주리그 소속 코린치앙스 알라고아누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소속팀을 찾아나섰다고 전해진다.

 

 

수원에 입단한 실바

위에서 다룬 올리베라와 같은 시기에 입단을 확정 지었다. 마찬가지로 이따마르와 산드로의 대체 외국인 선수였고, 올리베라보다 상대적으로 묻힌 선수이기도 하다.

 

활약상은 길게 이야기할 것이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수원에 입단하고도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는다는 차범근 감독의 코멘트가 자주 있었고, 특히나 체력적으로 너무 떨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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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레머니는 참 특이했던 실바)

 

 

그래도 전반적으로 기본 기량은 있어서 차범근 감독이 요구하는 플레이를 어느 정도 충실하게 하긴 했으며, 피지컬 능력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평.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헤딩골을 넣기도 했고..

 

올리베라와 간략하게 비교하자면, 179cm인 실바가 포스트 플레이를 올리베라보다 더 잘했다.

 

개인적으로도 올리베라보다 실바가 더 나은 선수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은퇴 

수원에 입단할 때도 나이가 많았기도 했고, 부상 문제도 컸기에 키프로스로 떠나 2009년까지 활동하다가 은퇴했다고 한다.

 

현재는 뭐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스포르팅이 중요 경기를 할 때, 포르투갈 언론에서 간혹 언급되는 정도이다.

 

 

 

 

 

 

 

 

--

오랜만에 외국인 선수 돌아보기를 작성했습니다.

그 전 글은 닉이 다른데, 저 닉으로 활동하려다가 정이 안 가서 몇 달 전에 다시 원래 닉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도 나와 있지만, 2006년 전반기 이전 선수들은 다루지 않을 생각입니다. 98년부터 수원 축구를 봤으나,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잘 안 나고 그냥 고종수 보러 갔던 게 전부이기도 하구요.

또한, 2003~2006년 전반기는 아예 축구를 못 봤기에 패스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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