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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아무렇게나 써보는 윤정환(길다)

Blue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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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팀 하고 전혀 관계없는 사람에 대해 써보려함.

그냥 주말에 쉬다가 이런 기사를 읽었는데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28&aid=0002394622

 

이 분을 내가 보면서 느낀점,,

선수,, 감독,, 각 역할 때 본 느낌에 대해 한번 써보려 해.

 

 

1. 볼을 예쁘게 차는 선수.

그를 처음 보게 된건 94, 95년쯤 올림픽 예선에서 봤음.

한국에서는 당시 플레이메이커라는 용어를 쓰는 포지션이 있었음.

지금과 비교하자면 공미라고 보면 대충 맞긴 할텐데 이 플레이메이커라는 역할을 전통적으로 소화하는 선수였음.(대표적 선수라고 하면 최문식, 최대식 등)

 

몸에 힘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볼을 차지만 그 볼의 강도가 절대 약하지 않은,, 볼을 정말 예쁘게 찰 수 있는 선수로 보였음.

그게 바로 올림픽대표팀 주장이던 그의 첫 인상.

 

오른발 프리킥 킥커, 전방에 볼을 넣어줄 수 있는 선수로 보였음.

올림픽에서 골도 넣었는데 결국 서동명이 예선 실패를 결정짓는 큰 실수를,,(당시 이운재는 후보)

굳이 이야기하자면 볼 트래핑은 떨어지지만 패싱력이 훨씬 좋은 다미르와 비슷했지.

 

 

2. 부천에서의 모습과 월드컵의 실패

부천에서의 초반기는 전통적 플레이메이커 보다는 그냥 프리롤.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는,, 수비 가담 잘 안하고,,

 

부천에서의 후반기는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였음. 전방의 이원식에게 넣어주는 패스가 일품이었던.

 

98월드컵의 경우 중원의 핵심은 유상철이었음. 언론에서는 플레이메이커 부재라고 그렇게 난리를 쳤지만 노정윤, 김도근 같은 선수를 써가며 예선을 압도적으로 통과했음.

같은 연령대의 최용수, 이기형, 최성용 등이 중용받던것에 비해 기회가 없었고 이는 그가 피지컬적인 면을 등한시 했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봄.

 

 

3. 해외 진출과 또 좌절

이미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던 윤정환을 탐내는 팀들은 꽤나 많았고,,

당시 일본리그는 한국보다 낮은 수준이었는데 적응력이나 기량적인 면이나 도움이 되는 한국선수의 진출이 꽤나 많았음.

 

이 중 윤정환은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을 하게 됨.

세레소는 한국인선수들이 쭉 뛰던 팀인데 황선홍, 노정윤, 고정운 등이 뛰었었고 니시자와나 모리시마 같은 선수들과 조화를 이루던 팀이었음.

 

NHK 월드에서 주말 경기들 틀어줬었고 주말 저녁 9시엔 축구 하이라이트를 보여줘서 즐겨 봤었는데 윤정환은 한국보다 더 편한 상황에서 축구를 하는 느낌이었어.

 

당시 축구를 보는 경헙이 없었지만 한국에서의 윤정환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고 같은 라인에 서 있는 미들이나 빠른 공격수를 향한 전방 패스로 살려주는 것은 잘했으나 타겟형 선수들에게 만들어주는 능력은 부족하다고 보였는데 일본에서는 이거 마저 잘하니 팀에서 떠 받들 수 밖에..

아무래도 한국보다 압박이 약한 일본에서 여유가 있었고,,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자유도가 높아서 더 잘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발탁된 2002 월드컵에선 단 1분도 뛰지 못하기도 하고,,

 

 

4. 다시 돌아온 한국과 연속된 실패

당시 성남은 피스컵에 나간다고 한국최고의 라인업을 꾸미기 시작함. 이때부터 돈을 많이 썼고 수원에서도 선수들이 많이 나갔지..

 

윤정환을 성남에서 영입했는데 고 차경복 감독하고는 성향이 안맞았고,,

이팀엔 이미 존재감이 강한 신이 있었으니,, 신태용.

 

팀에 두명의 머리는 필요하지 않다보니 경기를 뛰지 못했고 결국 이적.

당시 전북은 부천에서의 인연이 있던 조윤환 감독.

그러나 전북에서도 그닥 뚜렷한 활약이 없었던걸로 기억해.

 

내 생각에는 이미 적지 않은 나이에서 몸에 무리가 왔던 것 같고,,

일본에서의 여유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좀만 지체되면 바로 밟아버리는 한국에 오니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아.

 

, 한국선수이지만 한국리그에 적응을 못했다는 것.

 

 

5. 다시 돌아간 일본과 코치생활

우리가 익히 들은 사간도스라는 2부리그 약팀으로 이적하여 조용히 은퇴.

그리고 밑바닥부터 코치생활을 시작함.

 

그와 같은 대형스타가 한국에서 은퇴했다면 어느 한자리 맡고 시작했겠지만 내성적인 그의 성향과 축구계 주류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더 일본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는건 일본에서의 축구는 피지컬을 굉장히 강조했다는 것.

자신이 그토록 부족했던 피지컬을 일본에서 강조하여 성과를 냈음.

 

여기서 웃긴게 체력훈련으로 산타기를 그렇게 많이 했다고 함.(누군가는 구닥다리 훈련이라고 함.)

물론 반발도 많았겠지.

분명 과정은 불협화음이 많았는데 1부 승격이라는 결과를 냈고 1부에서도 열악한 재정상황 내에서 결과를 내고 있던 상황에서 내부적 불협화음에 의해 결국 사퇴를 하게 됨.

 

이후 사간도스는 1부 중위권 팀으로 자리잡았음. 운영도 나쁘지 않고 좋은 감독도 데려왔고.ㅎㅎ

 

 

6. 울산감독

울산 시절은 좀 더 상세하게 적을 수 있지 않을까.ㅎㅎ

울산시절 별명이 붙음. ‘윤할’, 맨유시절의 반할을 빗댄 별명. 나쁜 별명이란건 다들 알테고

 

또 산 타는 울산.ㅋㅋㅋ 동계훈련의 대부분이 체력훈련이었다고 함.

경기를 보면 왜 윤정환 감독이 체력적인 훈련이 많았고 강한 체력이 필요했는지 알 수 있음.

 

일단 빌드업 부분에서

두명의 센터백과 두명이 수비형미들을 중심으로 볼을 소유하되 양 풀백, 윙은 될 수 있는 한 최전방까지 올라가서 각자의 사이드에서 스위칭을 하도록 요구받음.

공격의 핵심은 윙과 풀백이고 기동성, 스피드가 굉장히 중요함.(이런면에서 이기제에게 기대함.)

이로인해 공수간격은 굉장히 넓어지는 경향이 크고 이공간을 메우기 위해선 강한 피지컬이 요구됨. 또한 불안정한 공격전개를 위해 경합하는 볼이 많다보니 전방의 피지컬도 중요한 요소.

 

우리도 이러한 축구를 경험한적이 있는데 차붐..

피지컬 위주의 축구 공수간격이 넓지만 스피드가 빠른,,

이런 축구의 약점은 피지컬 압박을 선수단이 얼마나 버텨주는가,,

선수단 평균적인 피지컬에 따라 경기력 기복이 크다는 점.

 

윤정환도 마찬가지의 문제를 겪었고 일본과 다른 상황에 또 다른 문제를 직면하게 됨.

일본에서라면 통했던 피지컬이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 선수단이 전부 상태가 좋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안좋은 상황에서도 통하던 것이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으며 순위는 하락하게 됨.

 

또한 언제부턴가 볼을 점유하는 것을 좋은 축구라고 여기는 한국축구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는 윤정환의 축구에 대한 안좋은 여론.

 

조민국때부터 조롱거리였던 축구를 놀림받다가 인내심이 바닥난 팬들.

 

일본에서도 잘했으니 한국에서도 통할거라고 낙관했던 안일한 프론트들.

 

이 모든게 합쳐져서 그를 궁지에 몰았고 결국 계약만료 후 재계약이 없는 씁쓸한 상황.

결정적으로 FA42차전 우리가 숨통을 끊어버림.ㅎㅎ

 

결론적으론 높은 이상을 원하는 상황이지만 한국에서의 적응이 더디었다고 생각.

 

 

7. 다시 일본으로,, 그리고 성공

이번엔 세레소 오사카로 감. 전통의 팀이지만 2부리그로 떨어졌다가 갓 승격한 팀임.

 

그는 변한게 없다.

또 다시 체력훈련. 비슷한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함.

 

여름 한때 1위를 달리기도 했지만 역시나 피지컬의 한계를 느낀 선수들의 피로도가 쌓여 기복을 보이다 후반 막판 다시 연승을 달리며 좋은 성적을 이뤘음.

또한 컵대회를 2개나 우승.

 

한국에서 보여준 모습과 다른점이라고 한다면,,

후반에도 상대팀 대비하여 피지컬적 우세를 보여줬다는 것. 후반 막판 골을 잘 넣는 팀이 되었음.(반대로 얘기하자면 한국에서는 상대팀 대비 피지컬 우세를 못 보여줬다는 것.)

수준급 외국인 선수를 통한 축구를 잘 했다는 것.(특히 6번 소우자)

 

그 외는 비슷함.

체격적 우세를 앞세워 셋피스 골 많고,,(리그 1)

양 측면의 속도를 살려 롱 카운터가 많음.

 

 

마지막으로 그가 이뤄낸 결과를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각 리그마다 성향을 비교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가 되는게 윤정환 감독의 성적이 아닐까 생각해봄.

 

또한 한국 축구에서는 감독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음.

만약 윤정환 감독이 남았다면 울산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갖게 되고,, 그나마 비슷한 성향인 김도훈 감독으로 잘 뽑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상 마음대로 쓰기 끝.

Blue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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