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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축구부 애들을 보며 느낀 전세진 사건

구찌뽕
1987 29

1. 전세진을 이해한다.


학교에서 애들 가르치고 있어. 축구부애들 보던 입장에서 전세진 용서 했으면 해.


지금 일하는 학교는 아니지만 전에 5년 근무한 학교에 축구부가 있었거든.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였고. 다들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알겠지만, 중학교때 진짜 실력있다 하는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프로 산하 유스팀으로 먼저 스카우트 되어서 가는거고, 그 다음이 각 지역 축구 명문 고교(부평고나 안동고 같은)로 가고... 남은 친구들이 일반고 축구부를 가지. 그게 안되면 지역 클럽에 가고.


그러니까 사실 이 40여명의 친구들중에 매년 한 두명 정도만 프로에 입문해. 내가 수업들어갔던 축구부 애는 부천fc 신인으로 들어가서 1년만에 나오더라. 아무튼 그만큼 일반고 축구부에서 프로되는건 쉽지가 않은 일이야. 

그런데 내가 다니던 학교가 사고를 쳤네? 전국 단위 대회에서 꽤 높이 올라간거야. 전국단위 대회니까 당연히 스카우터들이 경기를 보고 있었고. 그 경기 에이스였던 2학년 공격수를 찜한거지.


얼마 후에 학교가 떠들썩해졌어. 고2 짜리를 에이전트가 축구화 사주면서 달라 붙은거야. 학교에서는 전교1등 카이스트 보내는 느낌으로 (어... 이 글 읽는 세대가 어떤 새대일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그런 좋은학교는 거의 특목고애들이 독식하다시피 하면서 가. 일반 인문고는 서연고 합해서 2~3명이라도 가면 대박이야) 축구부 애에 환호했어. 혹시나 싶어서 이름 정확히 안쓰겠지만, 이번 사건으로 우리가 겁나 싫어하는 그 에이전트사 맞아.


애도 기분이 엄청 떴는데 내가 그 학교 떠날 때 쯤에는 말이 쏙 들어갔다고 하더라. 유명한 에이전트사에서 그냥 프로도 아니고 벨기에 리그팀으로 보내준다고 그러는데 혹하지 않는 고등학생이 어디있겠어. 현실은 다들 프로도 못되고 선택받은 소수만 2부리그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상황인데, 자기는 말끔한 프로팀에서, 그것도 유럽팀에서 데려간다잖아. 에이전트도 붙는다잖아 진짜 프로처럼. 마음은 이미 프로지 뭐.


내가 그 친구 졸업하는것까지 본건 아니고, 근무지를 옮기게 되기는 했는데. 아무튼 계약은 지지부진하다가 틀어진거 같아. 멀리서 지켜봤을 뿐이니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아마 그 회사가 전국적으로 수십명 찜해놨다가 그 중에 자기네 구미에 제일 당기는 한 두명 데려간거 아닐까 싶더라. 유럽 그팀이라고 신입티오가 30명인건 아니잖아. 그냥 찔러나본거 아닐까 싶더라고.


글쎄. 그 학생 그 이후에 잘 살고 있겠지. 내가 모를 뿐 축구선수로 성장했을지도 모르고. 근데 아무튼 내가 그 학교 나갈때 쯤에는 거의 15시즌 마지막 성남전에서 제파로프에 정성룡털린 수원팬 표정으로 있었던 것 같아. 운동이라고 집중이 됐을까 싶네.


2. 어리다고 순진하진 않지만.


전세진 건도 비슷했을거라고 생각해. 나름 국내 에이스코스 밟으면서 오기는 했지만 매탄이들도 에이스 한 두명만 콜업이지 축구 그만두는 십수명의 동기들이 있는거잖아? 아마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재능은 있었는데 부상입어서 나가리된 친구도 봤을거고, 온 기회 못잡아서 나가리된 친구들도 많이 봤을꺼야. 한 영역에서 10년 짬 쌓이면 (초등부터 매탄고 졸업까지) 볼거 못볼거 많이 본 상태지.

그런데 혀로 먹고 사는 에이전트가 붙어서 너 유럽갈수 있어. 수원에선 몇년 너 뽑아먹고 엄청 잘해야 유럽보내잖아. 유럽에서 뛰어야 유럽 구단 가기 좋지. psv알지? 챔스 나가는 구단. 나 히딩크도 알고 psv사람들도 잘 아는 에이전트야. 이러고 히딩크랑 찍은 사진 보여주면서 뽐뿌질하면 머릿속에 챔스 입장곡 안들리는 10대 선수가 있을까? 난 없다고 봐. 솔직히 언감생심이 사람 심리 아니야? 마음으로는 수원가서 열심히 해야지 했던 애도 이 정도로 당기는 이야기 계속해주면 당연히 끌릴 수 밖에 없다고 봐. 


그리고 이런 에이전트들 생리중에 하나가. 당연한거지만 부모를 녹여. 학생 본인보다 부모가 더 절실하고 잘 넘어오거든. 내 자식 하버드 갈 수 있다는데 마다 할 부모가 있을까? '옆집 철수도 중학교때 외국 콜 들어왔었는데 그때 갔으면 또 모르는데 남아있다가 감독 잘못만나서 무릎 조졌었잖아. 여보 아무래도 뜨내기 구단도 아니고  psv라는데 유럽 지금 보내는게 기회 아닐까?'


뇌피셜 내자면 아마 에이전트가 애를 흔들어 놨을거고 부모를 완전 녹여놨을거야. 전에 전세진 부모가 쓴 글이라는게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 하는 말이긴 한데... 

그 글 보면 솔직히 부모가 100% 자의로 쓴거 같지는 않더라. 에이전트가 뽐뿌쳐놓은거지. 어느 부분이 특히 그랬냐면... 이 팀을 '삼성'이라고 부르고 있는 부분에서 그랬어. 매탄중 매탄고 코스 타면서 수원 구단 산하라고 생각하지 삼성구단 산하라고 생각할까? 제일기획 넘어간게 언젠데? 

그게 축사국에서 만들던 "대기업 삼성의 폭거 vs 힘없는 한국축구의 미래 전세진" 프레임 그대로 들고 온거거든. 이런식으로 써서 여론반전되면 아드님 유럽갈수 있어요 같은거에 녹아서 에이전트랑 머리 맞대고 쓴 글 같다는 거지. 상식적으로 어느 선수 부모가 팬들한테 사과하는 글에 "프로 유스 들어간게 덫이 되어 돌아왔다"든가 "수원 돌아와도 조건없이 유럽 보내달라든가"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애 처맞는거에 제일 민감한 건 애 부모야. 애 용서받게 하고 싶으면 허리 숙이고 똥물 맞으라면 웃는 낯으로 맞는 사람들이 부모라고. 그런데 그런 글을 쓴거 보면 에이전트가 깊게 개입한 글 같다는거지. 아마 전세진 부모는 에이전트에게 '몸과 마음을 지배당하는' 상황 아니었을까 싶어.


여기서 또 한 걸음 더 뇌피셜 속으로 걸어들어가자면, 아마 전세진은 "(솔직히 나도 psv가는거 싫지는 않은데) 부모님이 저렇게 완강하시니 그냥 부모님한테 맡기자." 정도 스텐스가 아니었을까 싶어. 어려서 순진한 건 아니지. 수원에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것도 아니야. 근데 빅버드 경기 한번 못뛰어본 친구한테 무슨 충성심을 바래. 그건 지가 선수생활 하고 응원 느끼면서 생기는거지.

하지만 이 영악한(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친구에게 잘못이 있다면 "자기 일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진다"는 자명한 사실을 몰랐던거지. 근데 이건... 20세 이전의 누구나 그렇지 않나? 저 명제를 익혔을 때 보통 어른이라고 하잖아.


이미 부모가 된 지금은 어려운 결정있으면 아내랑 상의해서 결정하고 그 책임을 지지만, 전세진 나잇대의 나는 사실 어려운 결정 있으면 부모님 뒤에 많이 숨었던거 같아.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 나는 지금까지의 전세진은 비난 못하겠다는 말이야.


3. 그러므로 비난받아야 하는 순서는


첫번째는, 김현회의 탐사보도가 맞다는 전제하에 에이전트 노모씨. 자기는 전면에 나서지도 않으면서 그냥 찔러본거지. 그렇게 선수장사하면 돈이 되니까.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아직도 대승이 팔면서 삼성의 폭거 vs 힘없는 청년 전세진 구도로 만들라고 한 개x놈이야. 


두번째는 역시 엿맹이야. 병x들이 밥쳐먹었으면 지들 제도 이상한거 찾아서 고칠 생각해야지...


세번째는 전세진 선수 부모야. 자식 미래 생각해서 욕심낸것 까진 좋았는데, 모든 행동엔 댓가가 따른다는건 아셨어야지. 유럽을 선택하면 수원한테는 욕쳐 먹을수밖에 없는거야. 아무리 에이전트가 유소년 제도 병x이라고 꼬셨어도. 행군길은 어찌 피하시려고...


마지막으로 미래의 전세진 선수야. 지금의 전세진은 잘못했지만 아직 자기의 선택 내지는 방임이 어떤 책임을 낳는지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며 이해해줄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다만 미래의 전세진은 어떤 행동을 하든 남들보다 더 의심 받겠지. 그 의심을 지우는건 성인 전세진의 실력과 선택일 거라고 봐. 한 2년 박수받게 뛰다가 재계약 한번 하고 유럽가면 그땐 너도나도 오늘날의 전세진 사건을 병x같은 유스 제도 때문에 생긴 하나의 헤프닝이었다고 하면서 웃어넘길 수 있지 않을까?


너무 글이 길고 복잡하다. 내용이 잘 전달되면 좋겠네.

구찌뽕
2 Lv. 477/8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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