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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흙수저 반란 이끈 '송호대 주장' 김준형, 그가 수원에 오기까지

덴마겐조
202 9

https://www.bluewings.kr/news/834238

 

2016년 U리그 왕중왕전 결승을 지켜본 많은 축구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름조차 생소한 강원도 횡성의 2년제 대학교가 전국의 강호들을 차례로 연파하고 결승까지 진출하여 대학축구의 최강자 고려대와 맞붙은 것이다. 결승에서는 비록 접전 끝에 아쉽게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이 사건은 많은 축구팬들에게 송호대학교, 그리고 그 팀의 주장인 김준형이라는 선수의 존재를 각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흙수저들의 반란
2009년에 창단되어 역사가 불과 7년 밖에 안되는 송호대의 U리그 준우승은 대학축구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송호대 개교 이래 최고의 성적인 것은 물론이고 U리그 시작된 이후 강원도 소재 대학교가 최고 성적을 달성한 것이었다.
 
이런 놀라운 결과는 설움을 떨치고 똘똘 뭉친 ‘흙수저들의 반란’ 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모두 다들 사연이 있기 때문에 욕심 없이 그라운드 위에서 준비한 것만 보여주자는 각오였어요. 사실 저희 학교가 훈련량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거든요(웃음). 2년간 성실하게 몸을 만든것을 마지막에 터져나온 것 같아요” 라고 주장 김준형은 송호대의 돌풍의 원동력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사실 김준형 선수가 처음부터 ‘흙수저 선수’ 였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처음 축구화를 신은 이후 빠른 주력을 앞세워 좋은 평가를 받았고 엘리트 선수로서 나름 순탄한 길을 걸어왔었다. 그러나 중학교 이후부터 그의 역경은 시작되었고 이를 이겨내야만 했다.
 
#역경을 이겨내야 했던 학창시절
첫 번째 시련은 중학교 때 찾아왔다. 다니던 중학교 축구부가 갑작스레 해체돼 어쩔 수 없이 전학을 가야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에는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다시 우측 무릎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수술 후 제대로 된 경기를 치르지 못한 그는 1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옮겨야 했다.
 
진주고등학교에 새 둥지를 튼 김준형은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축구화를 신었다. “모든걸 털어버리고 진주고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요. 부상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좋지 않았지만 새벽부터 밤까지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친구들 잘 때 몰래 나가서 공을 차기도 했으니까요”
 
무릎 수술 후유증을 털어낸 김준형은 몸상태를 되찾았다. 악바리 근성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조급함이 독이 되어 이번엔 발바닥에 무리가 왔다. 동계훈련을 마친 김준형은 경기장이 아닌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다비드실바 그리고 송호대
잦은 부상과 재활을 거치면서도 김준형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운동을 못할 때는 우상인 다비드 실바(스페인)의 영상을 보면서 공부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등번호인 21번도 다비드 실바의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작은 체구로도 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실바를 보며 다시 경기장에 설 날을 준비했다. “친구들은 ‘너랑 실바는 너무 다른 스타일’이라며 인정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쉽게 쉽게 플레이 하면서도 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실바가 너무 멋있었어요. 같은 포지션에서 뛰는 실바 선수를 보면서 복귀를 준비했어요”
 
긴 부상의 터널에서 빠져나왔지만 이번엔 대학 진학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진학이 확정적이었던 학교에서 탈락 통보를 받았다. “대학 걱정은 없었어요. 3학년 초에 대학이 확정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입시 결과를 확인한 김준형은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고등학교때 많이 뛰지 못한 것이 걸림돌이 됐어요. 당연히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탈락 통보를 받으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죠”. 갈 곳이 없어진 김준형은 부랴부랴 프로팀 공개테스트에 지원했다. 최종 3차 테스트까지 갔던 곳도 있었지만 결국 그를 불러준 팀은 없었다.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셈이었다.
 
매번 역경을 이겨냈던 김준형이었지만 더 이상 축구를 할 곳이 없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이대로 축구를 그만둘까 고민 했었어요. 제 길이 아닌 것 같아서요. 하지만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움직이질 않더라고요.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자 라는 마음이 더욱 커졌던 것 같아요”
 
갈 곳이 없어졌지만 축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다시 고등학교를 찾아 나이 어린 후배들과 함께 공을 차며 몸을 만들었다. 그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전 중학교 은사로부터 강원도 횡성에 있는 2년제 송호대학교를 추천 받은 것이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곳이었지만 ‘2년간 몸을 만들어서 다시 도전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라는 제안이었고 김준형은 이것이 마지막 이라는 심정으로 기회를 붙잡았다.
 
#마지막 기회를 잡다
절망의 끝에 본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김준형은 완벽히 거머쥐었다. 특유의 악바리 근성으로 더욱 끈끈한 선수로 거듭났다. 2016년부터는 송호대학교의 주장완장을 차고 돌풍을 이끌었고 개교이래 처음으로 왕중왕전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프로입단 제의를 명문 수원삼성으로부터 받기에 이른다. “수원삼성이라니, 정말 꿈 같았어요. 어릴 때부터 정말 좋아했던 팀이었거든요. 고민의 여지가 없이 당연히 가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그는 수원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현재 수원삼성의 클럽하우스에서 개인훈련을 진행하고 있지만 정말 수원의 선수가 된 것인지 아직도 꿈속을 걷는 기분이라고 한다. “정말 마음고생 많이 하면서 운동 했거든요. 축구를 그만 둘 생각도 했었고, 앞이 막막했던 시절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수원삼성의 엠블럼을 달고 인터뷰를 하고 있잖아요. 스스로 ‘인간승리’했다고 칭찬하고 싶어요. 얼마 전엔 아버지와 축하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옛날 일들을 생각하니 아버지와 저 모두 눈물이 나더라고요”
 
“정말 오랫동안 꿈꿨던 프로팀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대학무대와는 비교도 안될 치열한 경쟁이 있는 곳이기에 더욱 열심히 준비할 것입니다. 어려운 시련을 이겨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도전도 꼭 헤쳐나가고 이겨내고 싶어요. 팬 여러분께서 믿고 봐주시면 또다른 송호대의 반란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덴마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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