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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신문선에 대한 평가라는데..

나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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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선은 1987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축구협회장을 맡으면서 축구협회에 들어온 자입니다. 그 자야말로 축구계 여당 출신입니다. 김우중이 축협회장할 때 한국축구가 가장 암울했던 시절입니다. 축구를 매우 좋아했던 김우중이 매년 20억~30억원을 출연하여 축구협회가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축구협회는 돈이 될만한 사업을 전혀 추진하지 못했죠. 김우중의 지원금이 없었으면 1990 월드컵에 나간 우리 대표팀은 거지꼴이나 겨우 면할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문선이 김우중 체제의 축구협회에서 한 일이 바로 축구발전을 기획하는 일이었죠. 대표팀을 경영하는 축구협회에서 돈을 벌지 못하면 한국축구의 기반이 무너집니다. 프로 이전의 단계인 학원축구 발전에 대한 책임은 축구협회가 지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신문선은 학원축구를 발전시킬 어떤 대안도 실천하지 못하고 축구협회 내에서 따 당합니다. 그 인간의 인성이 안하무인이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만 똑똑한 척 하니 누가 알아주겠어요. 그 인간은 월간축구지같은 곳에 '한국의 축구인들은 헤딩을 너무 자주해서인지 모두들 머리가 굳었다'는 글이나 써갈기면서 정작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할 생각도 안 하고 하지도 않았던 자입니다.

 

신문선의 대표적인 위대한 업적(?) 으로는 1992년 아시안컵 예선에 국가대표팀이 아닌 대학선발팀을 내보냈다가 본선 조별예선에도 못 가보고 예선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김우중은 축구협회장을 관두면서 "내가 앞으로 허승표, 신문선 패거리와 축구 이야기를 하면 사람이 아니라 개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랬던 자가 정몽준이 축구협회장이 되자 돌연 야당 행세를 합니다. 처음에는 정몽준도 이 자가 일 좀 하나 싶어 기용했는데 얼마 안 가 깡통이라는 걸 금방 알고 내쳤다더군요. 그 이후 이 자는 MBC 축구해설을 맡아 사사건건 대표팀과 축구협회를 물고 늘어짐으로써 자기 이름을 높이는 작전으로 나갑니다. 1998년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 차범근이었는데, 차범근을 어찌나 까대는지 연대 출신(신문선은 연대 77학번) 축구인들이 '야 이 자식아..너나 잘해! 연대 망신 그만 시켜'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죠. 신문선이는 늘 고대 출신을 까는데, 그 자야말로 연대 인맥이라면 꺼벅 죽는 놈입니다.(저 역시 연대 나왔습니다. 74학번..) 허정무에게도 '너같은 놈이 후배라는 게 부끄럽다'는 소리 듣던 자죠.

신문선은 2005년에는 축사모, 2009년에는 축구연구소라는 축구계 내 반정몽준 세력의 앵무새 노릇을 하던 자입니다. 그 해에 축구협회장 선거가 있었거든요. 둘 다 신문선의 재정적 후견인 허승표라는 자가 만든 단체입니다. 허승표 또한 연대 출신 축구인인데, 아버지가 허만정이라고 엘지그룹 창업자 중 한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허승표는 돈이 좀 있긴 한데, 축구협회의 재정을 책임질 정도의 돈은 없고 그저 신문선이나 이용수 같이 축구협회에서 쫓겨난 자들에게 용돈이나 줄 정도죠. 허승표는 2005년과 2009년 축구협회장 선거에 나섰지만 두 번 다 졌죠.(2005년에는 정몽준에게, 2009년에는 조중연에게)

축구협회장 선거는 축구협회에 등록된 대의원과 각 지방축구협회에서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 축구인들의 신망을 측정할 수 있는 기회인데, 허승표와 신문선은 두 번 다 축구인들의 신망을 얻지 못했죠. 축구인들도 아는 거죠...저놈들의 말은 믿을 게 못된다는 것을요. 그 원인이 바로 김우중 회장 시절 신문선이가 보여준 무책임과 무능 그리고 교만이었던 것입니다.

 

나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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