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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대한민국 서포터즈 역사

eggpl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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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질문이 있어서 대한민국 서포터즈 역사에 대한 글 올려드립니다.

과거 그랑블루 회장을 지내셨던 이민재님이 그랑블루 게시판에 올렸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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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블루가 붉은악마의 역사를 훔쳤다니?]

안녕하세요 수원 서포터 이민재입니다,

헤르메스 서포터가 쓰신 글에 제 이름이 거론 되어서 저도 한국 최초의 서포터가 어디인지 붉은악마를 만든

그랑블루에 대하여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끄적여 볼까 합니다.


안양에 살고있던 제가 1995년 수원팀이 창단한다는 애기를 듣고 하이텔 축구동에 가입하였었는데 그 당시 서포터라는 말도 없었던 그런 시절이였죠.. 국내에서 서포터란 단어를 처음 사용하게 된건 1996년에 수원 그랑블루 였는데 1995년 그 당시 축구판에는 국대팀 경기때에는 김흥국의 아리랑 응원단이 위력을 발하던 시절이었지요..


제개 1995년 수원팀이 생긴다고 하여 하이텔 축구동에 가입할시 한국 축구판에 유럽식 남미식 선진 축구응원 문화를 펼쳐보이기 위해 이 한 몸 바치고자 했던 사람들이 축구동엔 너무 많아서 참으로 행복했던 곳이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가 하이텔 축구동에 가입할당시 축구동엔 여러 팬클럽이 많았지만 아쉽게도 팀 팬클럽은 하나도 없었죠 그 당시 유명 선수인 황선홍의 황새팬클럽 윤정환의 제리팬클럽 이런 식으로 선수 팬클럽은 넘쳐났지만 팀 팬클럽이 하나도 없다가 1995년 하이텔 축구동 송년회때 당시 수원 구단 리호승대리가 참석하여 1996년 리그에 참석할 수원의 발전적인 클럽 운영 방안을 브리핑하면서 이에 감동을 받아 하이텔 축구동 회원분들중에 그 당시 좀 유명하신 분들이 지금 수원서포터의 시초인 하이텔 윙즈 팬클럽을 개설하게 되었지요. 그 당시 윙즈팬클럽 회장은 한태일님 이었고 부회장이 지금 수원구단의 이은호님인걸로 되네요..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1995년 하이텔 축구동 회원들은 그 당시 유공,포항,엘지,일화 등등 모든 팀들을 함께 좋아하고 함께 응원하던 시절이였죠... 그 당시는 대한민국 프로축구의 발전을 위해 힘을 합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특정팀이 있기는 하지만 서울 연고지팀이 일화 유공 엘지 3팀이 있던 그 시절 동대문에는 하루에 두게임이 벌어지곤 했는데 하이텔 축구동 회원들은 첫경기 유공을 응원하다가 두번째 경기엔 포항팀을 응원하는게 당연하던 시절이였죠 지금으로선 상상할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 열앋한 프로축구 발전을 위해 여러팀을 응원하던게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였죠..


그러나 그 당시 하이텔 축구동에 무척이나 호감을 가지고 계시던 유공 이계원 단장님과 하이텔 축구동과는 많은 교류가 있었기에 하이텔 축구동호회는 유공을 많이 성원하였고 축구동에 달필로 유명하시던 신동일 선생님 지금 축구협회에 송기룡 형님등 많은 축구 애호가들이 그 당시 유공의 니폼니쉬 축구 스타일에 홀딱 매료되어 축구동과 유공은 참으로 잘 맞는 부분이 있었죠 그러나 그 당시 아쉬웠던 것은 유공이 하이텔 축구동과 참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아쉽게도 유공팀 팬클럽이 없었죠..


유공팬클럽을 대체하던게 그 당시 유공 소속의 윤정환 제리 팬클럽이였고 양원석님이 회장이였죠...그당시 유공팀 응원은 제리 팬클럽이 앞장을 섰었지만 아쉽게도 팀팬클럽으로 넘어가지 못했지요...


그러다 1995년 12월 27일인가 한태일님 고용국님 이은호님이 주축이 되어 최초로 수원블루윙즈의 팬클럽 "윙즈"팬클럽이 하이텔 축구동에 팬클럽 게시판에 개설이 되었죠.. 그러나 윙즈팬클럽도 초창기 회장인 한태일님이 대학진학 공부를 위해 윙즈팬클럽이 생기자 말자 1년여 활동을 못하게 되었고 이은호님은 군입대하게 되고 그래서 윙즈 자체를 이끌어 나갈 사람이 없게 되어 시즌 전까지 붕떠 있는 상태 였다가 시즌이 시작되면서 제가 직접 총대메고 윙즈팬클럽의 운영을 맡게 되면서 6년간 그랑블루의 리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1996년 윙즈팬클럽이 하이텔 축구동호회와 함께 경기장 썹팅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 처음 7명에서 시작하다가 수원의 축구바람과 함께 점점 윙즈팬클럽이 늘어나게 되었죠.. 하이텔 유니텔 나우누리 윙즈 팬클럽에다 수원지역 중고등학생 모임이 함께 하면서 수원팬클럽 인원이 점점 늘어나면서 차후에 제가 좋아하는 영화 "그랑블루"의 이름을 수원팬클럽 연합 명칭과 잘 어울리는거 같아 "그랑블루"라 정하게 되고 연예인 집단 같은 팬클럽 명칭을 던져버리고 팬클럽을 대체할 명칭을 뭐라 할지 고민하다 유럽축구에 밝은 동생들의 도움으로 그 당시 한국축구판에 무척 생소한 서포터스 클럽이란 명칭을 국내에서 처음 사용하여 그랑블루 서포터스 클럽이라고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사용하던 서포터라는 명칭이 널리퍼지고 기자들도 응원단이란 명칭에서 서포터스클럽이란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죠...

어쨋든 1996년 수원의 신바람 축구와 수원서포터클럽와 하이텔 축구동의 영향으로 프로축구판에 새로운 응원문화가 이 땅에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면서 저는 오늘은 수원 응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포항도 응원하고 성남도 응원하는 그런 팬심이 결코 축구판에 도움이 되지 않겠다 생각해서 결국은 오직 수원 서포터만이 수원을 응원하는 것으로 정하고 오직 수원팬 하나만을 하지 못할 사람들은 수원 서포터클럽에서 탈퇴하는걸로 못을 박아 버렸지요.. 그 당시에 수원 서포터클럽이후로 1996년 부산 서포터가 두번째로 생겼었는데 그 당시 이런 저런 반발도 많았지만 이때 부터 한팀만을 응원하는 서포터 클럽이 자리 잡게 되었죠.. 그리고 그 이후로 세번째 서포터 클럽인 안양팀이 생겼는데 워낙 안양 이 친구들은 독립적인 서포터로 시작해서 응원가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그래서 저희와도 응원가가 겹치지 않고 참으로 경갱적으로 즐겁게 대립하던 초창기 시절이였죠.. 1996년 이때도 목동 경기장을 사용하던 부천팀은 서포터 클럽이 없었죠...


1996년 수원을 시작으로 부산 안양 이렇게 본격적인 서포터클럽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프로축구판도 신명나는 응원바람이 불어오게 되었죠.. 그 당시 수원 서포터클럽이 성공적인 정착을 하는걸 지켜보면서 저와 함께 수원 서포터클럽을 이끌었던 신인철과 함께 수원 서포터크럽을 발전시킨 노하우를 가지고 국가대표 서포터클럽을 만들어보자고 서로가 다시 새로운 꿈을 펼치 되었죠...


그래서 하이텔 축구동 운영진과 그리고 원로들과 함께 국가대표 서포터클럽을 만드는데 함께 힘을 합치게 되었죠... 그래서 그 당시 축구협회에 계셨던 지금 강원팀 단장인 김원동 형님의 도움속에 축구협과 하이텔 축구동과 함께 국가대표 서포터클럽을 만들어 나가게 됩니다. 그 당시 제가 국가대표 서포터 클럽을 만들자고 제안 하였기에 그리고 수원서포터클럽에서 저와 인철이가 밑 바닥부터 헤쳐나간 노하우가 있기에 국대 서포터쿨럽 조직을 이끌어 나가게 되었고. 일단 제가 지은 "그레이트한국서포터스클럽"이란 조금 유치한 ^^ 명칭으로 국대서포터 활동을 시작하다가 차후 제가 하이텔 축구동 게시판에 국대서포터 이름을 공모했는데 그 당시 이름을 못정하고 질질 끌다가 전남 서포터클럽을 만든 박숭범님이 제안한 붉은악마란 명칭이 박종환 감독시절 세계청소년 축구 4강 신화로 그 당시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던 그 기분 좋은 기억이 되살아 나서 붉은악마란 이름으로 정하게 되었죠..


그리고 하이텔 축구동에서 붉은악마 서포터 클럽을 이끌어 나갈 리더를 못뽑아 고민하다 하이텔 축구동 운영진과 원로님들과 사당 포장마차 타운에서 술 한잔 하면서 수원에서 저와 고생도 많이 했지만 탁월한 리더십도 있는 인철이가 붉은악마 회장에 적임자 이라 생각하고 인천이를 추천하여 그날 부터 인철이가 붉은악마 리더가 되어 제 예상되로 붉은악마를 멋지게 이끌어 나가게 되죠..


그리고 저 밑에 글에 저때문에 수원이 붉은악마를 안도와 주었다 하는데.. 저는 붉은악마에서 인철이가 리더이기에 제가 뒤로 빠지는게 좋겠다 생각하여 빠지게 된거고 그래도 수원 운영진들은 계속 붉은악마 운영진으로 인철이를 도우며 계속 활동하게 되었으니 이상한 루머 퍼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물론 인철이와 저는 서포터문제로 이래 저래 대립하고 그런적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수원이 인철이를 그리고 붉은악마를 도와주지 못하게 하고 그런적은 없었습니다. 1996년 초창기 붉은악마가 현장에서 피토하며 주축으로 썹팅을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수원 서포터와 안양 서포터 그리고 하이텔 축구동에서 부산 부천 포항 천안을 사랑했던 축구회원분들 입니다. 그당시엔 헤르메스 서포터란 조직은 생겨나지도 않았고 1997년에 프랑스 월드컵예선에서 붉은악마가 엄청난 인기를 모으면서 포항,천안 서포터 클럽이 생겨날때 그 당시에 김종오님이 헤르메스란 서포터클럽을 만들게 되었죠... 물론 이때에 부천 헤르메스 분들이 붉은악마에 중추적으로 활동한건 다 아는 애기이고요... 그러나 그랑이 붉은악마의 역사의 시작이라는건 그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는것도 절대 잊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수원 서포터를 처음 활동하면서 그 이후 생겨나는 모든 서포터 클럽을 다 보았습니다.

헤르메스가 붉은악마를 탄생시겼다. 그랑이 그 공을 가로챘다는 의견에 참으로 할말을 잃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제발 신동일 선생님 김시문 형님 그리고 양원석이에게 가서 유공과 부천 서포터클럽의 탄생에

대하여 자세히 물어보세요.. 그분들이 바로 지금 유공시절의 산증인들이니까요..


에효.. 너무 긴글 올려서 죄송합니다. 제발 역사는 날조되지 않고 정확히 기록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수원의 좋은 라이벌이자 앙숙이였던 부천, 안양 빨리 K리그에서 예전 처럼 치열하게 다시 싸우고 싶습니다.

당신들과 함께 햇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다시 한번 그대들과 피 튀게 눈물나게 붙어 보고 싶네요..

모두들 K리그에서 만나요!



eggpl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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