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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염기훈의 관점에서 염기훈이 생각하는 수원

홈오프풋볼수원특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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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발가락이 부러져 회복에 몇 개월이 소요될지 모르는 선수를 계약했다는 소식에 많은 수원팬은 갸우뚱했을 것이다. 일본의 한 병원에 누워 그 소식을 들은 나 조차도 ‘정말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차범근 감독님은 고쳐서 잘 쓰겠다며 나를 받아줬다. 처음 수원 선수가 되어 수원의 유니폼을 입고 밟았던 빅버드의 느낌은 정말 놀라웠다. 최고의 선배들과 뛴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수많은 팬의 응원에 더더욱 놀랐다. 수원에 입단 후 첫 경기에서 두 골을 넣고 ‘2010 남아공월드컵’에 갔으나 귀국 후에는 집밖에 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비난을 받으며 힘들었다. 나를 다시 뛰게 해준 것은 수원삼성 팬들의 지지였다.




사실은 그분들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바라는 국민이었기에 나를 응원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월드컵 이후 수원팬들은 풀죽은 내게 “기죽지 마라!!!” “우리가 있으니 걱정마라!!!” “네가 하고싶은대로 마음껏 뛰어라!!!” 라고 소리치며 지켜줬다. 그런 응원을 받으며 뛰면서 ‘내가 잘해서 이 분들을 정말 기쁘게 해주고 자부심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다. 염기훈이 우리팀 선수여서 좋다는 느낌을 드리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뛰었고, 2010년 하반기와 2011년 시즌에도 많은 포인트를 기록했다. 팬들이 나를 인정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만 29세로 더 이상 군 입대를 미룰 수 없어서 경찰청에 가게 되었다. 그때 팬들이 소극장을 대관하여 잘 다녀오라며 송별회도 해주었고 K2리그인 경찰청 경기에도 매번 많은 분이 찾아와 응원해줬다. 




2015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 나는 구단과 계약을 마무리하지 못해 팀의 스페인으로 전지훈련에 동행하지 못했다. 양 측은 세부 조항에서 이견이 있었고, 나는 다른 팀을 알아봐야 하는지 수원의 조건에 맞춰야 하는지를 두고 구민했다. 혼자 개인운동을 하고 있던 나는 사실 얼마든지 다른 팀으로 갈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수원과의 재계약을 기대하고 있었다. 




매일을 울상으로 개인운동을 하던 나에게 아내는 “오빠~ 얼른 가서 그냥 사인해~ 더 좋은 일이 있겠지”라고 말하며 다독여주었다. 연봉을 올리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더 좋은 일이 있겠지”라는 말에 그 길로 사인을 하고 바로 스페인행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그 시즌에 사우디아라바이에서 제안이 온 것이다. 2년 동안 40억. 


어렵게 팀에 다시 합류한 뒤 반년 만에 엄청난 일이 생겼다. 40억원은 당연히 뿌리치기 힘든 금액이었다. 수원에서 받는 연봉을 생각하면 평생 벌 수 없는 돈이었고, 사우디아리비아가 외국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리그임을 고려하면 대우받으며 운동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도 있었다.




그럼에도 고액 연봉보다 수원에 잔류를 선택한 것은 수원 팬이 가지는 가치 때문이었다. 내가 너무 힘들 때 나를 지켜줬던 수원의 팬들, 수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수원에 입단한 이후로 수원은 지속적으로 예산이 줄었고 나뿐 아니라 많은 선수의 연봉이 줄었으며 대표급 선수를 영입하기 어려웠다. 이건 구단과 선수의 상황이었고 이 어려움을 팬이 감당할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선수와 구단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경기하면서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그 차이를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절대로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팀은 앞으로도 계속 힘든 상황일 것이 분명했고 나까지 팀에서 나간다면 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너무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내 편이 되어주고 나를 지켜준 사람들에게, 변화된 상황에서 나도 그들을 지켜주고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내가 제일 잘할 때 내 능력을 수원이라는 팀을 위해 쓰는게 맞다고 봤다.




수원이라는 팀은, 수원을 응원하는 팬이라는 존재는 적어도 내게는 몇 대가 먹고 살수도 있을 만큼 큰 돈보다 더 내 인생에 소중한 가치였다. 이 결정으로 모든 사람이 내게 대단하다고 했지만 수원이라는 팀을 사랑하는 팬들이 더 대단하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처음 그 제안을 받았을 때는 혼란스러움에 고민을 많이 했지만 모든 것을 정리한 후 나의 플레이는 더욱 수원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많은 경기를 뛰며 기록을 여러 가지 세웠고 내가 잔류하게 된 이유와 목표처럼 수원에 조금이나마 보답을 하게 된 것 같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수원의 대명사로 염기훈을 여겨준 것에 참으로 감사했고 이곳에 남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이후에도 팀은 계속 힘들었고 어려웠지만 그 상황을 내가 그 안에서 겪고 보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사우디에서 수원의 상황을 지켜봤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모두가 화가 난 상황에서도 내가 대표로 혼이 나는게 차라리 마음이 편할 정도로 그 안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훨씬 나았고 그러면서 나도 많이 성장했다. 그렇게 수원삼성은 나를 성장시켰다. 비록 내가 선수로 있는 동안에 K리그 우승은 할 수 없었지만 새로 입단하는 선수들이 “K리그 최고의 구단인 수원삼성에 입단하여 기쁘다”는 말을 할 때면 그래도 선수들과 구단, 팬들의 노력이 수원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K리그와 수원 그리고 가족이 있어 존재할 수 있다. 언젠가 아내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빠 근데 이제와 하는 이야기지만, 그때 내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오빠가 수원에 남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조언했지만, 오빠의 모습 ‘제발 나에게 남으라고 이야기해줘~’ 하는 느낌이었어~.”




나는 축구와 K리그, 수원삼성과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축구 선수 염기훈이다. 자랑스러운 아빠이기도 하다.

홈오프풋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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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윙~ 나가자~ 여기 모두가~ 널 따라가~ 트리콜로~ 나가자~ 여기 모두가~ 다 함께 해~! 친구들과 함께 ! 너를 위해 노래 해 ! 이 사랑에~! 후회는 없어~! 날이 가면 갈수록 널 그리는 맘이 깊어 가~ 아아~!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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