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수원의 충신, 일부 팬들은 그걸 망각했다

HOF
607 13

20170418171_99_20170418161401.jpg?type=w
(베스트 일레븐)

수원 삼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성적 측면에서도 문제지만, 클럽을 둘러싼 기류가 대단히 좋지 못하다. 수원 팬들은 이기지 못하는 팀의 상황에 극도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고, 급기야 일부는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말았다. 선수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이물질을 던졌다. 그리고 베테랑 수비수이자 팀의 정신적 지주 중 한 명이었던 이정수가 책임을 지고 돌연 팀을 떠나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더욱 겉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켜보는 처지에서는 착잡하다. 먼저 이정수가 생각했을 괴로움이 얼마나 클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극도로 과열된 당시 상황에서 맛봤을 모멸감은 둘째 문제다. 아무리 프로의 세계가 현재의 상황만을 평가받는 무대라고 하지만, 그간 수원에 헌신하며 수없이 즐거운 순간을 만들어주었던 과거를 모두 잊은 듯한 팬들의 반응에 섭섭함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 K리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프로축구계에서 클럽을 향해 충성심을 품고 실제로 행동하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단순한 계약 관계에 움직이는 선수들이 너무도 많고, 그 계약도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이 아닐 경우 무리하게 깨뜨려 원성을 사는 선수도 적잖다. 그리고 떠난 후에는 자신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외면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측면에서 수원은 정말 행복한 클럽이다. 굳이 김호·차범근 감독 세대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수원의 푸른 유니폼을 입은 이후에는 자신이 ‘수원 선수’라는 자각을 하고 움직이는 이들이 상당히 많은 팀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광스런 은퇴식을 가진 곽희주는 물론이며 현재 주장을 맡고 있는 염기훈이나 이정수 같은 선수는 다른 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다. 다른 팀에서도 능히 주전급 혹은 스타급 선수로 뛸 수 있는 이들이 빅 버드를 지키는 이유는, 자신이 뛰는 팀이 다름 아닌 수원임을 알기 때문이다. 수원이 처한 현실이 어떠하든, 자신이 가슴에 품었던 팀을 위해 충성스런 모습을 보이고자 했던 선수들이다. 이런 선수들을 최근 프로축구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까? 있더라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극한 실망감을 맛본 이정수의 과거를 떠올려보자. 2005년 수원에 입단한 후 2009년 가시마 앤틀러스로 떠날 때까지 이정수는 마토와 함께 가장 중요한 선수였으며, 팬들에게 가장 큰 지지를 받던 선수였다. 단순히 잘 뛰었던 선수 정도가 아니라, 지금도 수원의 마지막 우승 기록으로 남아 있는 2008시즌 K리그 정상 등극에도 힘을 보탰다. 그 후에야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한국을 떠난 후에도 수원에 대한 애착은 강했다. 수원 팬들의 뇌리에 지금도 강하게 남아있을 알 사드전 폭력 사태 당시를 떠올려보자. 이정수는 동료들이 그릇된 행동으로 부당하게 득점하자 한골을 돌려주자고 설득에 나섰고, 급기야 관중 난입과 양 팀 선수간 주먹다짐이 연출되자 감독의 지시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퇴장해버렸다. 이를 두고 호르헤 포사티 당시 알 사드 감독은 “친정팀과 맞대결이라 이런 상황이 무척 괴로웠을 것”이라고 감쌌다. 

실제로 이정수는 두 눈 질끈 감고 그대로 수원을 상대로 정상적 경기를 할 수 있었다. 다른 시각에선, 그게 더 프로다운 일일 수 있다. 현재 몸담고 있는 팀에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라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수는 친정팀 수원에 대한 배려를 끝까지 하려 했다. 알 사드를 떠나 수원으로 돌아오는 과정에도 마찬가지다. 알 사드를 떠난 직후, 이정수를 둘러싼 아시아 프로축구계의 스카우트 전쟁이 꽤나 치열했다는 후문이다. 프로는 돈을 따라가는 법이라고 한다. 그 잣대라면 이정수의 유니폼은 결코 푸른색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걸 포기하고 수원의 유니폼을 입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자신을 원하는 팀이 수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선수가 어디 있나?

물론 과거의 이정수처럼 활약하지 못하곤 있다. 위험한 파울도 많고, 몇몇 장면에서 큰 실수를 저질러 패배의 원흉이 되기도 했다. 과거야 어쨌든 현재 못하고 있으니 욕먹을 만하다는 일부의 시각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것 역시 프로라면 감수해야 할 일이며, 이점을 이정수가 모르진 않을 것이다. 거센 야유에도 불구하고 수원 선수들이 저마다 자신의 탓이라고 여겼던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비판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 선수가 보였던 헌신에 대한 존중도 잊어선 안 된다. 과연 그때 일부 팬들이 보인 행동이 진정 옳은 행동이었을까? 팀을 위한 열정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건 단순한 감정 배설일 뿐이었다. 

이정수가 수원과 인연을 맺은지 햇수로 13년째다. 머물 때 최선을 다하고자 했고, 떠난 후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팀은 수원이어야 한다는 것도 끝까지 가슴에 새기며 실천에 옮겼다. 하지만 그날 그 잘못된 풍경을 바라보며 큰 상처를 입었다. 스탠드에서 날아드는 욕설 때문에 자존감이 무너져서일까? 그간 이정수가 보였던 행동을 떠올리면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자존심보다, 십수 년째 내 팀이었던, 그리고 내 팬이라고 여겼던 수원과 수원 팬들에 대한 자긍심이 깨진 것이 더 아팠을 것이다. 

그래도 이정수는 이와 같은 폭탄 발언을 하면서도 끝까지 수원을 등지지 않았다. 일부 소식에 따르면, 계약 해지가 아니라 은퇴를 원한다는 뜻을 구단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팀은 수원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스탠드에서 저급한 욕설을 퍼부었던 그 몰지각한 일부 과격 팬들은 이정수의 그런 헤아림을 알기나 할까 모르겠다.
 

 

출처: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343&aid=0000070267

HOF
0 Lv. 3/90P


작성된 서명이 없습니다.
신고공유스크랩

댓글은 회원만 열람할 수 있습니다.


로그인 회원가입

공유

퍼머링크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