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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억울해서 못 살겠습니다.

푸르게푸르게
250 12

 신세 한탄 좀 하겠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청주를 벗어난 적 없던 시골 촌놈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처음으로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경기도로 가본게 수원 때문이었습니다. 물어 물어 수원 종합경기장을 처음 찾았을 때의 그 설렘, 많은 팬들의 환호와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에 매료되어 수원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저는 단 하나의 붉은악마였습니다.

 

 하지만 고종수 선수의 덤블링을 본 순간부터 제게는 푸른피가 흘렀습니다.

 

대학 선택의 순간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주대에 원서를 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빅버드에서 가깝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거짓말 조금도 안 보태고 서울대 갈 실력이 되도 아주대에 원서를 냈을겁니다.

 

 고 3 때 저는 수원지역 대학을 가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했습니다. 제 책상에는 수원경기 티켓이 붙어 있었고, 제 방에는

 

 이동국과 같이 찍은 고종수 선수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제 제일 큰 행복은 축구장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쁨을 위해 밥을 굶어도 좋았고, 시험을 못봐도 좋았습니다.

 

 2006년(2005년?) FA컵 8강 김해 원정 때는 원정 가기 위해 점심을 두 번 굶어 원정비를 냈고 내려갈 때 단돈 800원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돈으로 초코바 하나 사먹으면서도 배고픈지 모르고 응원 했습니다.

 

 흰 눈이 내렸던 2008년의 겨울...... 저는 간신히 취업한 회사 입사 한달만에 상사에게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1차전과 2차전이 벌어지는

 

수요일과 토요일 이틀은 죽어도 일찍 가야겠다고 버텼습니다. 진심으로 회사는 잘려도 북패와 하는 챔결을 봐야했습니다.

 

한 때는 제 모든 것을 걸어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진짜 사랑해야 하는 아내가 있어 애정을 쏟긴 어렵지만

 

그래도 내게 수원은 내 생의 젊음이 녹아 있는 소중한 팀입니다. 그런 팀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타고

 

울화통이 치밉니다.

 

수원은 내 팀이고, 그 누구도 내 팀을 망칠 권리 따위는 없습니다. 내 팀을 망치는 이들에게 말합니다.

 

곧 죽창을 들고 가겠습니다.

푸르게푸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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