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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수원 외국인 선수 되돌아보기 - 2010년 ①

CSW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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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FA컵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루고 에두는 독일로 떠나고 나머지 외국인 선수들도 각자 다른 팀으로 떠낫다.

2010년에 잔류한 외국인 선수는 리웨이펑이 유일했다.

201년에는 차범근 감독이 중도 사임하는 이유로 여름 이적 시장에서 외국인 선수의 큰 변동이 있었던 해이기도 하다.

 

 

2010년 외국인 선수 일람

 

* 시즌 개막 기준

FW 5. 리웨이펑

→ IN : DF 3. 주닝요 / FW 11. 헤이날도 / FW. 9 호세모따

 

* 여름 이적시장 반영

DF 5. 리웨이펑 / FW 9. 호세모따

→ IN : FW 22. 다카하라 / MF. 8 마르시오

→ OUT : DF 3. 주닝요 / FW. 헤이날도

 

 

 

1부에서는 주닝요와 헤이날도 호세모따에 대해서 다루며..

이들에 대해서 지난 시간과 마찬가지로 약간은 길고 심심풀이로 읽을 만한 글을 마련해 보았다.

 

 

 

 

 

DF 3. 주닝요

 

 

 

수원에 오기까지 주닝요는?

 

 

2002년 프로 선수로 데뷔한 이래로 2009년까지 쭉 브라질에서 뛴 선수이다. 주닝요는 코리치바와 보타포구에 입단하였는데, 나름 준수한 활약을 보였는지 명문팀 상파울루 FC에 입단하기도 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렸는지 일 년 만에 다시 보타포구로 돌아갔다고 한다. 2009년 보타포구에서 7골을 넣는 대단한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잠시 주목할 것은 주닝요는 수비수이다. 공격수 아니다.

 

 

주닝요가 7골이나 넣을 수 있었던 것은 매우 매우 강력했던 프리킥 때문이었다. 그래서 브라질에서 거의 프리킥 스페셜 리스트로 꼽히기도 하고, 프리킥 잘 차는 수비수로도 이름값이 있었다고 한다. 뭐, 브라질에는 골키퍼인데도 프리킥으로 프로 통산 131골 넣은 호제리우 세니 같은 기인들도 많은지라 수비수인데 프리킥까지 잘 찬다고 떠 받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지만 대단한 것은 사실인 듯.. 게다가 주닝요는 대포알 슛이나 무회전 킥, 커브 걸린 슛 모두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아 이 점 때문에 더 프리킥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수원에 입단한 주닝요

주닝요.jpg

 

 

 

주닝요는 2009년 주장으로 보타포구를 이끌었으며, 시즌 종료와 함께 해외 진출을 알아봤다고 한다. 거기에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등의 유럽 무대도 있었는데, 결국에는 수원으로 오게 되었다. 수원에 입단하면서 브라질 1부 팀의 주장에 주전 수비수를 영입했다고 소개되기도 했는데, 이거 완전 2009년 알베스를 연상시키게 하는 그 내용이 아닌가 싶어서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기대를 접기에는 이른 감이 있고, 주닝요의 프리킥 스페셜 영상이 각 커뮤니티로 뿌려지면서 오히려 걱정보다는 기대를 더 받기도 했다. 게다가 기존 3번이었던 양상민의 번호까지 뺏어서(!?) 주닝요에게 줄 정도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일까 하는 무한한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사족으로 양상민인 전남에서 신인 시절 달았다던 28번으로 변경했다.

 

 

수원에서 주닝요는 차범근 감독의 백스리의 딱 중앙에 출전하였다. 일단 롱패스가 먹어주기에 옛날 독일식 선 굵은 축구의 장인인 차범근 감독이 흡족해 할 만한 장면을 만들어 주고 코너킥도 매우 정확해서 전술적 가치와 더불어 필살기 프리킥으로 득점원까지 활용 가능해서 장점은 매우 명확한 선수였다. 아마 프리킥은 주닝요의 공식 첫 경기인 AFC 챔피언스리그 1차전 감바 오사카와 경기에서 중앙 센터 서클, 한마디로 킥 오프하는 그 지점에서 무회전 프리킥으로 골 넣을 뻔 했던 거 기억하는 수원팬이라면 주닝요의 프리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작성자는 당시 WS석 1층에서 봤는데 무슨 공이 뱀이 기어가듯이 S자로 쭉 날라가더라...

 

 

근데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수비력은 뭐 수비수니까 기본은 하는데, 마토처럼 공중볼을 매우 잘 따는 것도 아니고, 곽희주처럼 적극적으로 몸싸움하면서 상대와 싸워주는 타입도 아니고 그렇다고 빠른 것도 아니었다. 단순하게 말해, 남미식으로 아기자기하게 수비지역에서 풀어가고 조직력으로 승부 보는 수비 전술에서 빛날 선수인데 역할 분담이 확실할 것을 요구한 차범근 감독 전술 아래에선 글쎄올시다 였다.. 뭐, 이건 기량은 허접은 아닌데 K리그 무대에 어찌 써먹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선수... 그래서 차범근 감독은 주닝요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기까지 했으나, 인천 유나이티드와 경기에서만 효과보고 다른 팀들과 경기에선 기동력에서부터 털리다보니 몇 번 안 쓰고 봉인.

 

 

결국, 여름에 떠낫다... 차범근 감독이 사임하고 윤성효 감독이 부임한 그 시점에 팀을 떠났다던데, 윤성효 감독이 내쫓은 것은 아니라고 하며 이미 오니까 없었다고 한다. 근데 뭐 주닝요를 먹튀라고 해야할지 잘했다고 해야할지... 수비력은 K리그 스타일에 전혀 안 맞아 눈뜨고 못 봐줄 수준까지 털리는 것을 봤는데, 리그에서는 3골 2도움을 올리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암드 포스와 경기에서 30M 프리킥 골도 넣고, 호세 모따에게 택배 코너킥으로 도움도 꽤 올리기도 했고... FA컵 동국대와 경기에서도 혼자 두 골 넣기도 했으니. 예전에도 주닝요를 보면 뭐라 평가할지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짧게 말하자면, 망한 선수인데 팀 기여도가 높았다.

 

 

수원을 떠난 뒤

 주닝요2.jpg

(↑ 티그레스의 주닝요. 세월의 풍파를 제대로 맞은 모습이다.)

 

 

 

 

사실, 주닝요가 수원 입단한 초반보다 여름이 다가오는 시점에 상당히 많이 털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어느 정도 유추할 사실 하나가 있긴 하다. 그것은 국적 취득 문제로 정신이 다른데 팔려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폴란드 신문 기사에 나온 내용이기도 하다.

 

 

주닝요는 브라질 사람이긴 하지만 조부모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을 피해 브라질로 망명한 폴란드 국적 사람이라 폴란드 국적을 취득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건 주닝요의 본명인 Anselmo Vendrechovski Junior에서도 잘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며,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주닝요는 폴란드계 브라질 이민 3세라 하면 될 것이다.

 

 

이걸 2010년 수원에 오기 전에 알았다고 했으며, 수원에 있던 그 시기에 폴란드 국적을 따려고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주닝요가 폴란드 국가대표로 유로 2012에 출전하고자 하는 원대한 목표를 가졌기 때문이었다고. 그러나 본인이 미흡한 준비 과정으로 무산되고 말았다고 한다. 뭐, 그 이후에 폴란드 국적을 취득했다고는 하지만 이미 유로 출전은 물 건너 가버린 상태였다.

 

 

하여튼, 잡소리는 접어두고. 수원을 떠난 뒤에에는 멕시코 1부 리그의 티그레스로 이적해서 현재까지 뛰고 있다. 뭐 주장직도 다년간 수행하고 있고 팀 내 위상도 상당하다고 한다. 멕시코에서 다년간 활동한 이유로 멕시코 국적도 취득했다고 한다. 아마도 국적 수집에 재미가 들렸나 보다.

 

 

 

 

 

 

FW 11. 헤이날도

 

 

잘나가던 놈

헤이날도2.jpg

(↑ PSG에서 헤이날도.)

 

 

수원 입단하기 이전까지는 잘나갔다고 한다. 뭐,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수원에서는 끔찍한 모습만 연거푸 보였지만.

 

 

헤이날도는 브라질에서도 강팀인 플라멩구하고 상파울루에서 활동하다가 이 활약으로 프랑스로 날아가 파리 생제르맹이라 불리는 PSG에서 두 시즌 동안 65경기씩이나 출전했다고 한다. 이후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에서도 뛰었고, 산투스 FC와 알 이티하드와 같이 괜찮은 팀만 거쳐 갔던 잘나간 모습을 보였다. 이후 일본 제프 유나이티드 치바에서 뛰다가 2009년 보타포구에 입단하여 44경기 14골을 넣었다고 한다. 참고로 위에 나온 주닝요랑 2009년 같이 뛰었다.

 

 

 

 

못난 놈

헤이날도.jpg

(↑ 그나마 의욕 있어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러고 주닝요랑 손잡고 수원에 왔다. 입단 당시에는 주닝요가 더 주목받았다. 헤이날도는 보타포구에서 경기는 많이 나왔지만 영상을 찾아본 수원팬들은 생각보다 못 한다는 평가로 크게 기대안했고, 불안하다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선견지명이었다. 진짜 드럽게 못했다. 위에 수원 오기 전 커리어가 쟁쟁하다고 이야기 했다지만 거쳐 왔던 팀마다 활약도가 들쑥날쑥한 선수로 이미 그렇게 알려졌다고 한다.

 

 

헤이날도에 대한 충격적인 기억은, 30살 넘은 베테랑 선수가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이고 슛만 잘못 때려도 얼굴을 감싸고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것이다. 거기다가 스트라이커로 나와서는 수원 윙 포워드하고 측면 수비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전형 붕괴를 일으킨 것 이정도이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수원팬들이 대표적으로 망한 외국인 말하면 헤이날도를 꼽는데 헤이날도 출전 경기가 리그에서 4경기와 아챔에서 몇 경기뿐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이 언급되는 것은 나오는 경기마다 못했기 때문이다.

 

 

뭐, 팀에 입단해서 부상을 당해 마음이 급한 것은 알겠지만, 20대 초반 어린 선수도 아니고 30살 넘고 해외 경험도 풍부한 선수가 이러다니....

 

 

 

 

 

알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수원을 떠나고 브라질과 중국에서 활동했는데, 더 웃긴 것은 거기선 몇 팀을 제외하고 활약이 다 좋았다고 한다. 수원에서나 그렇게 하지... 지금은 인도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유명한 브라질 레전드 지코 감독의 간택(?)을 받고 FC 고아에서 뛰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2015년에는 팀 내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FW 9. 호세 모따

 

 

수원에 입단 이전까지

 

 

브라질 출신이지만 브라질에서 뛴 기록보다 유럽에서 더 많이 뛴 선수이다. 브라질에서는 상파울루 주의 우니앙 바르바렌시에서 했으며, 이후 포르투갈로 건너가 히우 아브와 올리베이렌세에서 2003년까지 활동했다고 한다. 본래부터 포르투갈 국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브라질과 포르투갈 이중 국적이라고 하며, 그런 이유로 포르투갈 무대로 일찍이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북유럽에서 꽤나 오랫동안 활동했다. 올리베이렌세를 떠나고 덴마크리그로 진출해서 활동했으며, 비보르 FF에서 포텐을 터트렸다고 한다. 그러나 부상 등의 이유로 컨디션이 떨어지면서 올보르로 이적하게 되었지만, 무득점에 그쳐 노르웨이 1부 리그의 몰데 FK로 이적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몰데라는 팀은 솔샤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기 전에 뛰어던 팀이자 은퇴 후 감독으로 있어 현재 나름 인지도가 있어진 팀이다.

 

 

몰데로 이적한 뒤로 부상에서 회복하고 뛰어난 골 결정력을 보여 주전으로 활동했으나, 점차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부상이 겹치고 말았다고 한다.

 

 

 

 

수원에 입단한 호세모따

 호세모따.jpg

 

 

 

 

2010년 주닝요와 헤이날도와 함께 수원에 입단하였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인 호세 모따는 많은 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하였는데, 경기력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타입이었다. 전반적으로 활동량도 적고 느린 이유로 저돌적인 맛이 떨어진다고 답답해하던 수원팬들도 많았으며, 좋아하는 수원팬들은 압도적인 피지컬 능력과 정확한 헤딩 그리고 우수한 골 결정력으로 호세모따를 좋아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90년대 향수가 나는 공격수이기도 하다. 그저 골 넣고 전방에 비벼주는 역할에만 특화되었으니. 이런 이유로 나름 차범근 감독 전술에 맞는 선수이기도 했으며, 말로만 패스 축구를 사랑하고 차범근 감독과 다를 바 없는 선 굵은 축구 애호가인 윤성효 감독 전술에도 맞는 선수였다. 다만, 윤성효 감독 시기에는 한동안 주전 자리에서 내려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기도 했으며, 시즌 끝날 무렵에나 나와 연속 득점 행진을 보이며 11득점을 올리고 시즌을 마무리 했다.

 

 

전반기에 짐싸서 돌아간 주닝요와 호흡이 좋았다. 아챔에서 대부분의 득점 장면은 주닝요의 코너킥이나 올려주는 프리킥 이후 호세모따 헤딩이 고정적인 패턴이었으며, 수원은 8강전에서 성남 일화에게 탈락했으나, 호세모따는 16강전까지 아챔에서만 9골을 넣고 AFC 챔피언스리그 2010년 득점왕에 오르기도 하였다. 수원에서는 첫 아챔 득점왕의 탄생이기도 했다.

 

 

호세모따는 2010년 총 수원에서 20득점을 올리고 떠낫다. 나름 욕도 먹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나쁘지 않은 자원이었던 것은 확실해보이고 작성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외국인 선수 중 하나이다.

 

 

 

obama.jpg

 

 

 

참고로 수원에서 호세모따의 별명은 “호바마”였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닮은꼴이라 붙여진 별명인데 미묘하게 닮긴 했다.

 

 

 

 

수원을 떠난 뒤

 

 

다시 몰데로 돌아갔지만, 2011년부터 몰데의 지휘봉을 잡은 솔샤르 감독에게 기회를 받지 못하고 겉돌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고 2012년 자유계약으로 다시 K리그의 부산 아이파크로 돌아왔는데, 먹튀가 되고 말았다. 안익수 감독 스타일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전력외 취급 받으며 단 두 경기 출전하고 말았던 것... 이후로는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호세모따가 다시 K리그로 돌아왔는지 모르는 수원팬도 많을 정도. 게다가 등록명도 모따로 바꿔 등록하고 경기도 못나왔으니 기억하기란 쉽지 않았다.

 

 

은퇴 이후에는 뭐하는지는 잘 모른다.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1부 끝.

 

 

 

2부에서는 기존 외국인 선수인 리웨이펑과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입단한 마르시오와 다카하라를 소개합니다.

 

 

 

 

CSW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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