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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수원 외국인 선수 되돌아보기 - 2009년 ②

CSW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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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 이어...

 

2009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수원은 알베스를 내보내고 빈약했던 공격력을 보충하기 위해 두 명의 선수를 영입했다.

그 선수는 최전방 스트라이커 티아고와 측면과 중앙 그리고 미드필더까지 소화가능한 산드로 히로시였다.

 

 

 

 

 

FW 26. 산드로

 

 

산드로 히로시는 누구?

 

산드로히로시2.jpg

 

 

 

산드로 히로시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계 브라질인 3세이다. 그러한 이유로 외모도 동양적 느낌이 많이 나는 선수였는데, 브라질에서 나름 유망주로 좋은 대접을 받는 선수였다. 1997년에는 남아메리카 U-17 축구 선수권 대회 브라질 대표로 소집되기도 하였고, 상파울루 주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명문 상파울루 FC에 입단하기도 하였으며, 나름 쏠쏠한 활약으로 그를 좋아하고 기억해주는 팬도 있을 정도라고 했다. 이후 브라질에서 몇 팀을 더 거치고 2003년 아랍에미리트의 알자지라 클럽에 입단하기도 했으나,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주춤하고 말았다. 그리고 풍문으로는 1999년 나이를 속였단 이유로 출전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산드로 히로시에게 부상은 언제나 따라다녔다. 산드로 히로시는 수원에 입단하기 전, 대구 FC와 전남 드래곤즈를 거쳤는데, 이 부상이 문제가 되면서 먹튀의 전형이 되고 말았다. 물론 대구는 예외로 해도 좋다. 산드로 히로시가 대구에 처음 입성한 2005년에는 전반기 컵대회에서 7골을 폭발시켜 득점왕에 올랐고, 이후 리그에서도 빼어난 활약을 선보여 10골을 더 집어넣어 시즌 총 17득점이나 넣었다. 그러니.. 이렇게 잘하는데 누구든 건드리지 않으면 정상이 아닌 분위기였다. 산드로는 시즌 종료와 함께 2006년부터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근데, 앞서 말한 부상이 이때부터 난리가 난 것이었다. 산드로는 입단하고 3월에 3경기를 뛰고 다시 무릎 부상이 돋아 거의 통으로 재활만하는 위엄을 보였고, 시즌 말미인 2006년 10월에나 복귀해 당시 연말에 진행하던 FA컵 4강전부터 교체 멤버로 20분 정도 출전한 것이 전부였다. 참고로 이 FA컵이 전남한테 0-2로 패배해 종이컵을 든 그 대회 맞다.

 

 

그러고 뭐 2007년에는 비교적 건강하게(?) 시즌을 소화했고, 득점도 8득점을 올렸는데, 경기력 자체는 대구 시절 그 모습은 아니었으며 부상 후유증으로 탄력 있고 빠른 플레이는 점점 실종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8득점이나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기량은 좋은 선수란 평가와 함께 2008년에도 전남은 산드로를 잔류시켰으나, 3월 AFC 챔피언스리그 맬버른 빅토리와 경기에서 다시 무릎 장기 부상을 끊어버렸다. 근데 이번에는 브라질에서 전남과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팀으로 돌아오지 않는, 말 그대로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산드로의 수원 이전 커리어는 부상 역사를 읊어대는 느낌이다. 위에 글이 길어져 읽기 귀찮은 사람들은 아래  단락만 봐도 될 것이다.

 

산드로는 브라질에서 왼쪽 십자인대가 나갔고, 한국에선 오른쪽 십자인대가 나가버렸다. 그래도 대구에서는 잘해서 전남으로 갔더니 3시즌 동안 부상으로 두 시즌 날려먹고 2007년만 정상적으로 뛰었다. 더군다나 2008년에는 부상당한 뒤 복귀하라는 전남측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도망가 버린 것이다. 결론은 먹튀 중의 상먹튀.

 

 

 

근데 수원으로 왔네?

 산드로히로시.jpg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빈자리 채운 구색 맞추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왜 영입했는지 의문이 드는 영입이었다. 그나마 부상으로 골골대지는 않았는데,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 그냥 나오지 않는게 더 좋아보였다. 산드로 히로시는 출전 경기마다 되도 않는 개인기를 하며 패스를 안했고, 슈팅을 때리면 소녀슛 시절 이청용을 보는 듯한 어처구니 없는 슛을 때렸다. 뭐, 물론 전남에서 3년 동안 2년을 제대로 한 게 없어서 보여주기 위해 의욕이 과다했을 수도 있으나, 팀 플레이에는 민폐 그 자체였다. 그나마 산드로 히로시를 기억해 줄 것이 있다면, 에두의 故신인기님에게 달려가는 그 세레머니에서 옆에서 에두와 달려갔던 그 모습 하나 뿐이었다.

 

 

 

 

그 이후

 

 

팀 성적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는데 더 이상 냅둘 이유가 없었다. 2009년 시즌 종료와 함께 산드로는 브라질로 돌아가 상파울루 주리그에서 활동하다가 2011년부터 어린 시절 활동한 적이 있는 히우브랑쿠에 입단하여 2013년까지 현역 선수로 뛰다가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는 히우브랑쿠의 17세 이하 팀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2016년 10월부터는 17세 이하 팀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성인팀 감독에 부임하였다고 한다.

 

 

 

 

 

 

 

FW 23. 티아고

 

 

티아고는 어떤 선수?

 

 

브라질 우니앙 바르바렌시라는 상파울루 주에 위치한 축구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고, 이후 2000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오랜 기간 동아시아 무대에서 활동한 선수이다. 티아고는 중국에서 득점랭킹 상위권에 들 정도로 능력 있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를 계기로 2004년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에 입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티아고는 계속 자질구레한 부상을 달고 사는 모습을 보였는데, 일본에 가서는 부상으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말았으며, 2005년 한 해를 브라질에서 보내다가 2006년 상하이 롄청으로 이적해 중국 무대로 복귀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활약을 이어갔으며, 2007년에는 이장수 감독이 이끄는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해 좋은 골 결정력을 보이며 수준급을 활약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후 2008년 다시 임대로 베이징 궈안에 돌아왔으며, 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리웨이펑의 추천으로 수원에 입단한 티아고

 

 티아고.jpg

 

 

 

수원은 전반기에 에두도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서동현이나 하태균 등의 공격 선수들은 득점과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말았는데, 여름 이적 시장에서 차범근 감독은 득점력이 있는 선수를 찾다가 애제자 리웨이펑의 추천으로 티아고를 테스트 끝에 입단시키기로 했다. 뭐, 동아시아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였으나, 1977년생으로 서른도 훌쩍 넘겼고, 부상도 잦은 선수라 위험 부담이 있다는 평가로 크게 기대 받지는 않은 분위기였고, 이적 조건도 임대였다.

 

 

앞서 리웨이펑과 인연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티아고와 리웨이펑의 인연은 2000년 선진 핑안 시절에 리웨이펑과 같은 소속이었고, 2006년 상하이 롄청으로 이적했을 때에는 리웨이펑이 상하이 선화에 소속되어 다른 팀이었지만 상하이 롄청이 상하이 선화로 통합 흡수되는 과정에서 양팀 15인 선발로 팀을 꾸려 시즌을 진행할 때 같이 활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9년 여름에서 3번째로 만나게 되었는데, 리웨이펑은 차범근 감독이 고심하자 자기가 아는 좋은 선수가 있다며 티아고를 추천해줬다고...

 

 

그렇게 뭐, 팬들은 대체적으로 "영입했나보다~ " 이런 반응이었다. 근데 티아고의 첫 데뷔전인 성남 일화와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서 나름 준수한 모습을 보이다가 백지훈의 롱패스를 받아 다른 곳도 아닌 등으로 공의 방향을 바꾸어 상대 수비를 정신줄 빠지게 만든 뒤 가볍게 차넣어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선보여 수원팬들을 열광시키게 만들었다. 이후 서울과 경기에서는 안영학의 선제골로 앞서있던 후반 말미에 넋 놓고 있던 김진규 사이로 들어가 공간을 만들었고, 수비 지역에 있던 김대의의 정확한 롱패스를 완벽한 터치로 쐐기골을 넣어 완승을 이끌기도 했다. 이후 경기에서는 체력적인 문제와 194cm라는 장신에 비해 타겟 플레이가 신통치 않아 애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FA컵 전북 현대와 경기에서 골을 넣고 결승전 성남 일화와 경기에서는 패색이 짙던 후반 중후반 무렵에 페널티킥을 얻어 극적인 우승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물론, 승부차기에서 티아고가 실축해서 말아먹을 뻔 했지만 우리에겐 이운재가 있었고, 어쨌든 우승했으니 넘어갈 만하다.

 

 

수원에서 티아고에 대해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몸싸움도 좋지 못하고 키에 비해 헤딩 능력이 떨어지고 느려서 망할 징조가 다분한 선수였는데, 큰 경기에서 활약이 좋고, 공간 이해도와 죽이는 볼 컨트롤을 지녀서 평균 이상은 해줬다고 본다. 본래 이런 유형의 선수들이 망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상대 선수들은 그냥 몸싸움해서 공간 내주지 않고 헤딩만 못하게 막으면 아무것도 못해서 호구 잡히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그러나 티아고는 볼 다루는 능력이 상당히 좋고 빈 공간을 잘 포착해서 수비수 입장으로 상당히 까다로운 선수가 된 것. 이런 티아고의 스타일로 집중 견제가 없어진 에두의 활약도도 좋아지기도 했다. 티아고는 리그와 FA컵 모두 합쳐서 5득점 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전술적인 가치는 상당했던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

 

 

수원 이후에는..

 

 

브라질로 돌아가지 않고 2000년에 입단한 친정팀 격인 선전 FC에 입단하였다. 그러나 노쇠화로 자리잡지 못하였고, 2부 리그 소속의 청두 톈청으로 임대 이적하여 골 폭풍을 보이면서 청두를 승격으로 이끌기도 했다. 이 활약으로 티아고는 J2리그의 파지아노 오카야마로 이적하기도 했는데, 초반에는 득점 선두에 오를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으나, 점차 부상이 잦아지면서 2012년을 끝으로 일본을 떠났다고 한다. 2013년에는 상파울루 주 3부리그에서 활동하다가 은퇴했다고는 하는데, 이 정보는 불분명하고 크게 중요치는 않은 것 같다.

 

 

지금 2016년에는 뭐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티아고와 이름이 같은데다가 "주니오르"만 붙은 선수가(티아구 조르지 오노리우 주니오르) 상파울루 FC 유소년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봐서는 아들 뒷바라지하는 것 같다. 티아고의 아들로 추정되는 선수는 1999년생으로 몇 년만 더 있으면 프로 선수로 데뷔할 것으로 보인다.

 

 

 

 

 

 

 

 

2부 끝.

 

CSW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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