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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곽희주 은퇴 선언, 전설이 `된` 그 이름을 추억하며

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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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은 여전히 수원에 있습니다"

"연봉을 한 푼도 받지 못하더라도 수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농담으로 들리시겠지만 저의 피는 푸른색이고 심장은 수원에 있습니다. 

 또 '곽대장'은 어디 가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돌아갈 곳은 수원입니다"

"수원은 나에게 첫사랑이다. 모든 것을 이 팀에서 시작했고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2017년 1월 2일 K리그 클래식의 선수 한 명이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수원 삼성에서만 13시즌을 뛰었던 '곽대장' 곽희주입니다.

2014년 눈물을 머금고 팀을 떠난 원 클럽맨은 2015년 플레잉코치로 다시 복귀하여 자기가 바라던 대로 수원에서 은퇴를 했습니다.

그동안 챔피언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밝혔던 곽희주는 팀의 FA컵 우승에 기여하며 챔피언의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그가 사랑하는 수원 팬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 떠난 것이기에 더욱 홀가분한 마음으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곽희주 선수의 마지막 경기는 공교롭게도 라이벌 서울과의 8월 리그 경기로 기록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마지막 득점 역시 6월 서울에게서 기록한 헤딩골로 기록되었습니다.

서울과의 경기에서 항상 어느 때보다 빛을 발휘했던 곽희주 선수는 아쉽게도 그라운드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 했습니다.

이미 한 번의 이별을 경험했었기에 아쉬움은 덜 할 줄 알았지만, 그라운드에서의 영원한 이별이기에 수원 팬들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원한 수원맨 곽희주 선수의 은퇴를 축하하며 곽희주 선수와 함께한 추억을 되돌아보겠습니다.

 

 

[곽희주 커리어]

1981년 10월 5일 (35세)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시 출생

 

2003-2013 수원 블루윙즈 285경기 17득점

2014       FC 도쿄          0경기

2014       알와크라 SC     5경기

2015-2016 수원 블루윙즈  23경기  2득점

(* 클럽 출전은 정규리그 출전만을 카운트) 

 

2005-2008 대한민국 국가대표 6경기

 

 

 

 

1. 순탄치만은 않았던 신인 시절

 

신인 곽희주.jpg

 

(풋풋한 곽대장의 신인시절)

 

 

출생지는 강원도지만 곽희주 선수는 서울 증산초에서 축구를 시작해 연천증-숭덕공고(現 세명컴퓨터고)까지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냅니다.

곽희주 선수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당시의 안양 LG에서 테스트를 받아 합격해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동기의 탈락으로 광운대로 진학했습니다.

안양의 제의를 뿌리치고 광운대에서 활약 후 그가 2003년 선택한 구단은 바로 수원 블루윙즈였습니다.

당시 김호의 아이들 1세대 중 하나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곽희주는 팀의 중요 인물이던 이기형의 배번인 6번을 받으며 기대에 부응하기를 원했습니다.

 

6번 곽희주.jpg

 

(수원 팬들에게 6번 곽희주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곽희주의 프로생활 시작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당시 수원의 수비라인은 조-조라인(조병국-조성환)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고 여기에 김영선과 수비수로 전환한 레전드 박건하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립니다.

하지만 조병국의 국가대표 차출과 수비수들의 줄부상으로 2003년 5월 데뷔 기회를 가진 곽희주는 불안한 수비를 노출하여 3실점을 허용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호의 칭찬을 받았던 곽희주는 7월까지 경기에 나왔지만 올림픽 대표 팀에서 아인트호벤과의 평가전에서 결정적 실수를 하게 되고

클럽에서도 주전 선수들이 복귀해 다시 자리를 잃어 시즌 막판 교체로 출전한 채 03시즌 총 11경기를 소화하게 됩니다.

 

지금으로 따져봐도 신인치고는 많은 기회를 가진 곽희주는 오히려 시즌 종료 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돌연 은퇴를 결심하게 됩니다.

자신을 선택해준 김호 감독이 수원에서 물러났으며 새로운 용병에게 자신의 배번인 6번을 빼앗겼으며

선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왼쪽 눈의 한계로 주전 경쟁이 어려워지자 크게 낙심한 것입니다.

결국 2004시즌을 준비하는 수원의 유럽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않고 팀을 무단이탈하며 한때 임의탈퇴 신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곽희주를 다시 팀으로 복귀시킨 것은 당시 수원의 피지컬 트레이너인 이창엽 코치의 설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창엽 코치는 위치 추적을 사용해서까지 곽희주를 찾았고 "혹시 눈이 보이지 않는 후배 수비수들이 있다면 그들의 꿈이 되어야 한다"라는 격려로 1달 만에 그를 2군 훈련에 복귀시킵니다.

당시에 이창엽 코치가 없었으면 지금의 곽희주 선수는 절대 없었을 정도로 선수 생활 중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곽희주는 그렇게 팀에 복귀하지만 어려운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는 2군에서 계속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전설이 된 배번인 29번을 달며 2004시즌을 준비합니다.

 

 

 

2. 차범근의 선택, 그와 함께 이룬 영광의 순간

 

그러나 김호 감독의 후임으로 온 차범근 감독은 곽희주 선수를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시즌 준비전 무단이탈 행위가 컸기 때문입니다.

평소 선수들의 성실한 행실을 강조하는 차범근 감독이기에 곽희주의 그런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말이 2군이지 곽희주는 사실상 수원에 없는 선수와도 같은 취급을 받게 되지만 묵묵히 그는 연습에 매진합니다. 

 

하지만 이런 수원에 비상이 생깁니다. 전년도 김영선 선수가 무릎 인대를 다쳐 장기이탈이 예상된 가운데

조병국과 조성환은 올림픽 차출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조성환은 대표 팀에서 발목을 다쳐 쓰리백을 선택한 수비에 구멍이 생긴 것입니다.

연습경기에서 차범근 감독은 백업 조재민과 신예 이기형을 자주 기용하지만 성에 차지 않는 활약으로 고민이 깊어질 때

차범근 감독의 눈에 들어온 선수는 다름 아닌 자신이 걸러놓은 곽희주 선수였습니다.

곽희주는 연습경기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파이팅 넘치는 수비를 선보이며 '1군에 저만한 선수가 없으니 내가 좀 써야겠다'라는 차범근 감독의 판단으로 개막을 앞두고 1군으로 콜업됩니다.

 

 

2004 곽희주.jpg

 

 

(곽희주가 어려워했던 선수 중 한 명이 바로 김은중이었다.)

 

이창엽 코치의 설득에 이어 차범근 감독으로부터 두 번째 기회를 얻은 곽희주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지만 결과는 아쉬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리그 개막전 선발 출장하며 자책골을 기록하는 악몽과도 같은 경기에 이어 전기리그 내내 불안정한 수원 수비는 비판의 도마에 오르게 됩니다.

이러니 곽희주는 그 비판의 대상에서 집중 타깃이 되었고 시즌 내내 기량에 대한 의문을 제기당합니다.

하지만 차범근 감독은 이런 곽희주를 계속해서 기용시켰고, 그의 실수에 대해서도 큰 지적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곽희주를 믿었습니다.

실제 내성적인 곽희주는 "나 같은 경우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 자신감이 없어져 잘 못한다. 그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 않으신다"라고 밝혔고

이 효과는 전기리그 종료 후 컵 대회에서 팀이 최소 실점하며 옳은 선택임을 증명하게 됩니다.

또한 바르셀로나와의 친선전에서 유명 선수들을 상대로 기죽지 않는 플레이를 선보이며 주전 경쟁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올라섰습니다.

 

이렇게 팀의 주전 자리를 꿰찬 곽희주는 2004시즌 37경기를 소화하였고 모두 풀타임 출전을 하는 강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팀의 후기리그 우승과 함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맹활약하며 5년 만에 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더불어 곽희주는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며 축구 인생 첫 우승과 첫 개인 수상을 모두 차지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http://tvpot.daum.net/v/v98f2ckPRcHSMvHvHdGPcja

(여기는 동영상 첨부를 어케하는거야 ㅠㅠ)

 

 

(베스트 11 선정된 곽희주 수상소감)

 

 

 

결과론적으로 곽희주 선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이는 2005년 국가대표 승선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비록 김한윤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벤치를 지켰던 그지만 프로 데뷔 당시 달았던 등번호 6번을 달고 태극마크의 꿈을 이루게 됩니다.

또한 2005시즌 꿈에도 그리던 데뷔골까지 기록하며 골 넣는 수비수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곽희주는 간혹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며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수원 수비의 중심을 지키는데 성공하였고

2005, 2006년 어려운 팀 상황을 극복하고 2008년 차범근 감독과 함께 또다시 리그 우승과 컵대회 우승을 맛보며 최고의 순간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2008년 서울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는 귀중한 동점골까지 터뜨리며 유독 서울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곽희주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차범근 감독에게 주장 완장까지 받으며 계속해서 승승장구합니다.

 

 

 

곽희주 서울 2.jpg

 

곽희주 서울 1.jpg

 

(2008 챔피언결정전 당시 곽희주의 세레모니들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3. 두 번의 주장 완장, 예상치 못한 해외 진출까지

 

2009년 곽희주는 그간 보여준 리더십을 바탕으로 수원의 새로운 주장에 선임되지만 시즌 도중 주장 완장을 반납하는 아쉬운 기억을 남기게 됩니다.

당시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연속 우승을 노리던 수원이지만 팀 내 주축 선수들의 이적으로 인한 조직력 악화를 견뎌내지 못해 나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고

결국 이에 부담감을 느낀 곽희주는 이운재에게 주장을 내주며 부담감을 떨쳐내 팀의 FA컵 우승을 이끌어냈습니다.

 

2010시즌 한 클럽에서 2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기록하는 등 순탄한 모습을 보이는가 했지만

잦은 부상과 서서히 진행되는 노쇠화로 윤성효 체제에 영입된 마토와 황재원 등과의 주전 경쟁 등 어려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중앙 수비뿐만 아니라 측면 수비, 수비형 미드필드 위치까지 소화하는 멀티플레이어 능력으로 팀에서의 입지를 잃지 않았으며

결국 2012년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와 최고 선임으로서 다시 한 번 그에게 주장 완장이 돌아갔습니다.

2012년 주장직 당시에도 시련은 많았습니다. 염기훈, 김두현 등 기존에 수원에 애정이 많던 선수들의 군 입대와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유입되었고

특히 팀 내 태업 논란이 일어나며 기강이 무너진 선수들을 다잡는데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평소 내성적이던 곽희주는 이번만큼은 중간에 주장 완장을 반납하지 않으며 팀원들을 다독이는데 성공하며 리그 4위를 기록, 

포항의 FA컵 우승으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는 데는 성공합니다.

 

 

 

 

 

주장 곽희주.jpg

 

(누구보다 든든했던 곽대장)

 

 

하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 한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말았으니, 2013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은 곽희주는 결국 수원과 재계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투자를 했음에도 성적을 못 낸 것과 더불어 자생능력을 기르고자 하는 삼성의 방침에 따라 팀은 재정감축이라는 폭탄을 맞게 되었고

팀 내 고액 연봉자였던 곽희주의 연봉을 맞춰주기 힘들다는 소문과 함께 팀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이미 '리얼 블루'라는 정책을 시행 중인 것과는 다르게 진정한 리얼 블루 중 한 명인 곽희주를 잡지 못한 데에 대하여 팬들의 분노는 상당히 일었지만

08년 이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며 팬들에 대한 압박감과 미안함이 섞인 곽희주 본인이 자신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곽희주는 그렇게 수원을 떠나게 되었고 '수원 외 그 어떤 국내 구단으로 가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지켜 국내 구단과의 협상을 하지 않은 채 FA 미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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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상태임에도 새로운 소속 팀을 얻지 못하던 곽희주는 FC 도쿄의 훈련에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도쿄는 외인 선수의 부상으로 중앙 수비수가 긴급하게 필요했고, FA 신분이던 곽희주를 테스트하여 4월 그의 영입을 확정지었습니다.

하지만 입단 후 9월까지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며 결국 도쿄와의 계약을 해지하였고 14년 9월 카타르 리그로 이적하게 됩니다.

하지만 알 와크라에서도 적응에 실패하였고 임금체불 문제까지 겹치며 리그 5경기 출전에 그치며 팀을 떠나게 됩니다.

 

 

 

4. 돌아온 대장, 화려하게 태운 마지막 불꽃

 

곽희주 선수가 소속 팀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수원 팬들은 그를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그를 영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엇갈리기도 했습니다.

팀을 떠날 당시 이미 노쇠화가 진행되어 경기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1년간 제대로 경기를 출전하지 못했기에 그의 영입이 득이 될까 싶었습니다.

거기에 팀의 재정은 계속해서 감축되어 과연 전과같이 그에게 연봉을 맞춰줄 수 있겠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곽희주가 돌아오자 모든 수원 팬들은 두 손들어 그의 복귀를 환영했습니다. 곽희주는 15년 3월 플레잉코치로 수원에 복귀하는데 성공합니다.

 

곽희주 복귀.jpg

 

 

 

팀 내 젊은 중앙 수비만 있어서 중심을 잡아줄 노장이 없던 수원에게 곽희주의 존재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수원 수비의 중심으로 떠오른 조성진을 비롯하여 민상기, 연제민 등이 정신적 지주였던 곽희주에게 많은 배움을 얻게 되었고

특히 14시즌 비판에 시달렸던 구자룡은 곽희주에게 집중 코칭을 받으며 15시즌 새로운 수원 수비의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곽희주 본인 역시 5월 인천과의 경기서 교체 투입으로 1년 반만에 복귀전을 치른데 이어 6월 제주와의 경기에서 득점까지 성공시키며 몸 상태를 끌어올렸고

팀 내 부상자가 발생하여 스쿼드에 구멍이 생기면 그 자리를 메워주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 나갔습니다.

 

은퇴를 고민하던 곽희주는 1년 더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자고 결심하였고 이번에는 08년 우승 멤버였던 조원희, 이정수와 재회를 했습니다.

곽희주 선수는 2016년 4월 서울과의 경기에서 300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을 달성했지만 후반 막판 아드리아노에 가한 파울은 논란으로 남았습니다.

또한 이 파울은 6월 서울 원정에서 동점골 직후 골 세리머니로 재현되어 다시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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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독 서울과의 경기에서 많은 이야깃거리가 나왔던 곽희주였다.)

 

곽희주는 이처럼 자신의 마지막 시즌에도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로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는데 특히 FA컵 8강 성남전은 투지의 끝을 보여주었습니다.

성남과의 경기에서 두 명의 선수가 퇴장당하며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에서 쥐가 난 와중에도 상대 선수를 막기 위해 몸을 날린 것은 최고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하지만 곽희주는 8월에 있던 슈퍼매치에서 어깨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고 팀의 6년 만에 우승을 벤치에서 지켜보았습니다.

 

평소 챔피언의 자리에서 박수받으며 떠나고 싶어 했던 곽희주는 그렇게 1월 2일 은퇴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5. 전설이 된 그를 보내며..

 

곽희주 선수가 다시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곽희주 선수는 이제 대학 코치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이별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아프고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곽희주에게 수원이 첫사랑이었듯이, 역시 올드 수원 팬에게도 곽희주는 첫사랑과 같았습니다.

평소 저돌적이고 몸을 아끼지 않는 투지와 헌신으로 수비를 했습니다. 빠른 발까지 갖췄기에 풀백 역할도 충분히 수행해나갔습니다.

그렇기에 타 팀 팬들에겐 불편하고 괴로웠을 수 있지만 이런 선수를 가진 팬들이라면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단순히 국내에서 수원에서만 뛰었다고 레전드인 게 아닌, 선천적인 신체적 문제를 극복하여 정상까지 올라본

인간승리의 모습까지 보였기에 타 팀 팬들에게도 많은 귀감이 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곽희주 문신.jpg

 

 

아쉬운 점은 이런 전설적인 선수의 은퇴 소식이 구단 오피셜 기사가 아닌 스포츠동아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수원은 이러한 선수들에게 제대로 된 은퇴식도 못한 채 보낸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과거 박건하, 김진우의 은퇴식이 없던 것은 지금도 아쉽습니다.

부디 2013년과 같은 아쉬운 이별이 아닌 아름다운 이별의 자리가 마련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남긴 채 이 글을 마칩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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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프로축구연맹, 네이버, 다음팟, http://grandbleu.tistory.com/, 유튜브

 

 

 

http://blog.naver.com/osy0108

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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