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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크리스마스 휴전

풋볼제너럴킹나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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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imgur.com/XyJiRYz.jpg

[크리스마스 휴전 기념비, 출처-위키백과]


1차 세계대전, 독일은 베네룩스 3국을 거쳐서 프랑스의 수도권까지 한번에 돌입한다는 슐리펜 계획에 입각해 전쟁 전략을 수행하고자 했다. 프랑스도 바보가 아닌지라 바로 방어전으로 응수했고, 벨기에와 프랑스 국경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참호라인이 생겼다. 

벨기에의 이프르 지역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중간지대엔 시체 밖에 없다고 하여, 노 맨 랜드, 죽음의 땅으로 불리던 곳이 있었다. 여름 내내 독일과 프랑스는 일진일퇴를 반복하며 이 죽음의 땅에서 무의미한 소모전을 벌였다.

그런데 1914년 12월 24일 밤, 영국군은 독일군 참호 쪽에서 불길한 움직임을 감지한다. '야습인가?' 영국군 병사들은 총을 들고 독일군에게 응수하려고 하는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것은 총소리가 아니었다.


'고요한 밤...거룩한 밤...어둠에 묻힌 밤...'


지금이야 구식이라고 교회에서도 으른들 예배에서나 부를법한 캐롤을 독일군들이 부르고 있던 것이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때만이라도 싸우지 말자고 했다. 오랜 싸움에 지쳐 있던 영국군도 승낙했다.


그 죽음의 땅에서 그들은 함께 예수의 탄생을 기념했고 카드 놀이를 했다. 후에 독일군들이 작센지방 병사들아 것(*당시 병력 징발 체계는 자신의 연고지에서 복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을 알게되자, 영국군은 말장난을 한 것인지


'너희는 작센'Saxon' 출신이고, 우리는 색슨족'Saxon'이다'라는 말도 꺼냈다.


그리고 휴전의 마무리는 축구 경기였다. 독일이 영국을 3대2로 제압했다. 개리 리네커는 그냥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을 말했을 뿐인데 억울했을 수도 있다.


단순히 개인 간의 휴전으로 시작되었던 이 크리스마스 휴전은 삽시간에 전 연대를 넘어 서부전선 각지로 확대 되었다. 병사들끼리는 희희낙낙 했지만, 역시 병사들의 주적 간부들은 당연히 전시에 저렇게 태만한 태도를 보이는 병사들이 곱게 보지 않았다.  결국 휴전의 최초 당사자들을 군법 재판에 회부해 시범 케이스로 조졌고 1915년을 끝으로 이 죽음의 소모전에 더 이상의 휴전은 없었다.

https://i.imgur.com/nAO2TxV.jpg


크리스마스엔 이와 같은 따듯한 기적들이 많다. 오늘은 그런 기적들을 기념하는 날이지 커플들의 데이트 날이...아닌...아 잠만 눈물이 앞을 가려서 글을 못 쓰겠다.


풋볼제너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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