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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서울 연고 공동화정책이란게 없었다는 증거

PHILIP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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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95년등 북패가 동대문운동장과 수도권 여러 곳을 전전하며 유랑축구를 벌이던 그 시기에 

서울 아재들이 LG를 서울팀으로 인정하고 응원하는등 연고의식이 있었다는 개소리를 수블미 사람들도 들었을 거야. 

그러나 정확한 팩트와 그 시기 상황을 봐야할 것임. 

결론부터 말하겠다. 

"1996년 이전의 프로축구는 프로축구가 아니라 프로의 탈을 쓴 실업 아마축구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이야. 

그럼 1990년대 초반부터 되돌아가서 왜 K리그가 당시 아마축구에 불과했는지를 보자. 

90프로축구 최악의 한해1.JPG

 

90프로축구 최악의 한해2.JPG

특히 90년 프로축구는 전구단이 연고지를 임의로 설정하고 맘대로 경기를 열고 돌아다니는 수준이여서 

아마 실업축구와의 차이점을 찾을 수 없던 시기였다. 몰론 주로 열리는 경기장은 있었지만 그에 만만치 않은 경기수를 지방 수도권 가리지 않고 다녔기 때문에.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프로축구연맹과 스포츠 관계자들은 프로축구에도 지역연고제 정착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프로축구결산 중흥의 새기틀 94년 11월 16일자 1.JPG

 

프로축구결산 중흥의 새기틀 94년 11월 16일자 2.JPG

축구화제 축구장에 관중을 95년 6월 29일자 기사.JPG

 

프로축구단 지역연고설정 절실1.JPG

 

프로축구단 지역 연고설정 절실2.JPG

 

프로축구단 지역 연고설정 절실3.JPG

다음 글에서 그때 당시의 분위기와 판단들을 증거자료로 내보내겠다. 

 

 

 

PHILIP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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